사회 피플

[이 사람 - 미슐랭 원스타 '리스토란테 에오' 어윤권 셰프] "요리사의 제1 덕목은 배려...손님이 행복하게 먹으면 행복"

어윤권 셰프./송은석기자어윤권 셰프./송은석기자



어윤권 셰프가 운영하는 서울 청담동의 ‘미슐랭 원스타’ 식당 ‘리스토란테 에오’를 처음 찾은 사람은 헤매기 일쑤다. 분명 내비게이션이 목적지를 알리고 있지만 도무지 간판이 눈에 띄지 않아서다. 결국 발레파킹 주차 요원들에게 물어 에오가 있는 건물을 겨우 찾아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5층 리스토란테 에오’라고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찾아갈 때부터 심상치 않은 것이 ‘아는 사람만 오는, 혹은 오고 싶은 사람이면 꼭 찾아서 오라’는 어 셰프의 자신감이 아닌가 싶었다.

‘리스토란테’는 이탈리아어로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다. ‘에오’는 어 셰프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에 쓰던 성인 ‘어’를 이탈리아식 발음로 변환시킨 ‘에오’에서 따왔다. 올해로 문을 연 지 13년째인 이 식당은 규모가 아주 작다. 테이블 5개가 전부. 100% 예약제로 운영되며 메뉴는 당일 수산시장에서 파는 재료의 상태에 따라 구성을 달리해 항상 신선한 메뉴를 접할 수 있다.


사실 지난해 미슐랭 별 한 개를 받은 레스토랑 가운데 퓨전 음식이 아닌 정통 이탈리안 음식을 파는 곳은 리스토란테 에오가 유일하다. 레스토랑의 맛을 평가하는 미슐랭 암행들이 까다롭게 점수를 주는 곳은 프렌치·이탈리안 등 서양 음식이다. 정통 이탈리안을 고수하면서 원스타를 따낸 것은 어 셰프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미슐랭 측은 지난해 어 셰프가 이탈리아 요리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정직한 재료와 셰프의 남다른 이해도를 잘 표현해주는 요리를 추구하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어윤권 셰프/송은석기자어윤권 셰프/송은석기자


<구르메에오 그리고 뽀모>

양질의 음식 접할 기회 적은 중산층 위해

이탈리안 프리미어 간편식 시장도 진출

7명의 셰프가 수작업으로 100여종 생산

소비자들 반응 보며 끊임없이 혁신·고민

◇리스토란테 에오, 그루메에오 그리고 뽀모=
어 셰프와의 인터뷰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가든파이브에 위치한 이탈리안 프리미엄 간편식을 제조하는 ‘뽀모공방’에서 진행됐다. 국제 수준의 식품 제조를 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뽀모공방은 264㎡(80평) 규모로 공사비만 10억원가량이 소요됐다. 즉석에서 제품을 만들고 첨단 포장이 가능하며 수공예 음식을 만드는 기술자들은 전문 셰프들로 구성돼 있다.

이 공방은 항상 그 시대 음식과 디자인의 트렌드 속에서 미래 인사이트를 던져주는 곳이기도 하다. 압구정동 현대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이탈리안 테이크아웃 브랜드 ‘구루메에오’ 일부와 마켓컬리와 협업하는 가정간편식(HMR) 브랜드 ‘뽀모(나폴리의 좋은 품종의 토마토)’를 이곳에서 만든다. 이 가운데 뽀모는 정통 이탈리안 및 창작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소비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 공방에서는 즉석식품을 당일 만들어 당일 내보낸다. 모두 수작업이다 보니 한정생산일 수밖에 없다. 주문이 들어오는 만큼 만들지만 항상 손이 모자라 원활하게는 못 만들고 있단다. 공방에서 생산 가능한 메뉴는 100여종. 어 셰프를 비롯해 7명의 셰프가 하루에 보통 1,500개 피스(piece)를 생산한다.

그는 “소비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메뉴와 디자인 커팅, 음식량, 컬러까지 혁신과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며 “저탄수화물, 고단백, 안티 스트레스 푸드 등 기본적인 것을 중심으로 클래식과 창작을 버무리며 메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간편식 시장에 진출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테이크아웃 시장에 진출한 지 벌써 4년이 지났어요. 환경이 자꾸 변하다 보니 소득 격차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원래 리스토란테 에오를 차릴 때 중산층 일반인들이 이탈리안 음식에 대해 좋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중산층이 무너지고 양극화되다 보니 우리 식당을 찾는 분들은 갈수록 상류층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저의 음식을 경험시켜드릴 기회가 적어지는 것 같아 폭넓게 음식을 전개하고 싶었던 거죠.”

이어 구인난도 테이크아웃이나 HMR 시장에 진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서빙 직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레스토랑을 추가로 운영하는 것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압구정 현대백화점 테이크아웃 매장은 아내가 직접 일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운명의 이탈리아 요리>

고교때 호텔 요리 체험 계기로 셰프 꿈꿔

신라·힐튼호텔 등 거친후 1997년 伊 유학


현지 유명 레스토랑·호텔 등서 7년 생활

관련기사



귀국후 2006년 청담동에 레스토랑 열어



◇이탈리안 요리는 나의 운명=그렇다면 그에게 이탈리안 요리는 무엇일까. 어 셰프는 어릴 적 남들이 장래 희망을 물어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스스로 잘하는 것을 떠올리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때 체험학습 삼아 우연히 호텔 셰프들이 요리하는 것을 경험한 후 셰프의 꿈을 꿨다. 자연 친화적인 이탈리안 요리에 매료를 느낀 어 셰프는 지난 1989년부터 이탈리안 요리와 인연을 맺었다. 신라호텔에서 연수를 받은 뒤 세종·힐튼호텔을 거쳐 1997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 요리 유학 1세대였다. 이탈리아대사관에 가서 ‘요리유학’이라고 하니 한국 직원들이 무시했다며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입학한 라치오주립 요리기술학교의 커리큘럼은 좋았지만 27세의 청년이 문화가 다른 10대 아이들과 수업을 들으니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5개월 남짓 후 그는 학교를 나왔다. 새옹지마였다. 타고난 재능 덕분에 지아니노·파체 등 이탈리아 유명 레스토랑에 이어 밀라노 포시즌스호텔 ‘셰프 드 파티(부문 조리장)’로 발탁됐다. 7년간의 이탈리아 생활을 접고 귀국한 것은 2004년. 고향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파인다이닝을 갖고 싶어서였다. 2006년 그는 요리에 대해 잘 아는 미식가들이 모인다는 청담동에 ‘리스토란테 에오’를 오픈했다. 이제 그의 부티크 레스토랑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 최고경영자들과 정재계 인사들, 예술가 등 오피니언 리더들이 교류하는 사랑방이 됐다. 어 셰프는 “9시 뉴스를 보면 참 재미있어요. 다들 저희 레스토랑에서 보던 분이거든요”라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남이 행복하게 먹는 것이 나의 행복”=그에게 셰프의 자질을 물었다. 어 셰프는 제일 먼저 ‘배려’를 꼽았다. 요리를 좋아하기 전에 일단 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리의 본질을 좋아하고 견디다 생기는 게 재능이란다. 깊은 재능은 하늘이 주시는 것인데 사람을 사랑하는 배려가 있어야 하늘은 그 재능을 허락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좋은 식자재를 마주했을 때 내가 먹는 것보다 남이 먹는 것을 행복하게 여겨야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이 행복한 것을 보면 내가 더 행복해지는 ‘배려’ ‘사랑’ 같은 기본적인 덕목을 갖춰야 하겠죠.”

그에게 음식의 의미는 남달랐다. 좋은 것이 들어가면 좋은 것이 나오는 게 신체의 이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편의점의 간편식이 들어가면 사실 나오는 게 뻔하지 않겠냐고 어 셰프는 지적했다.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금방 지치고 피부도 나빠지고 몸에서도 쾌쾌한 냄새가 난다는 설명이다.

“사람이 신경과 눈·육체를 많이 써서 에너지를 소모하면 이를 호환할 수 있는 좋은 성분이 몸에 들어가 다시 순환이 돼야 합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은 맛과 형체를 음식과 비슷하게 만들 뿐이지 필요한 성분과 원물(원재료)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므로 인체가 잘 받아들이지 못해 소화가 안 되는 것이죠.”

그는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조금만 피로해도 피곤한 향이 나는데 그게 바로 음식 냄새”라며 “좋은 사료와 좋은 환경에서 자란 소는 천연의 향이 있다. 양식 생선이든, 채소든 향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에게 먹는 것은 경쟁력이다. 배추 한 포기를 먹어도, 고기 한 점을 먹어도 좋은 재료는 첨가물 없이도 그 자체로 맛있단다. 좋은 재료에 인공첨가물을 넣는 것은 자살골을 넣는 것과 같다. 좋은 재료의 맛을 인공적으로 내주는 것이 조미료인 만큼 이를 넣는 것은 그만큼 재료가 부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생활 수준이 높은 곳의 식자재들은 퀄리티가 좋을 뿐 아니라 간도 없고 양념도 없다”면서 “상류층은 재료 본연의 맛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약간의 소금 맛만 있다. 입에 달라붙는 맛, 재미있고 자극적인 맛은 뇌를 즐겁게 해주는 오락적인 개념이지 음식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런 맛들은 중독이 되는데 머리도 무겁고 숙면도 못 취하는 그런 피곤한 삶이 연일 계속된다”고 조언했다.

[이사람] 어윤권 셰프 인터뷰./송은석기자[이사람] 어윤권 셰프 인터뷰./송은석기자




◇ 최저임금 여파에 맘고생 “한지붕 두 가족 같아”
=이런 어 셰프에게 고민이 있다. 그는 요즘 한 달여간 ‘리스토란테 에오’ 식구들에게 휴가를 주고 잠시 식당 문을 닫아 이곳 이탈리안 푸드 공방에서 살다시피 한다. 뽀모의 일손이 달려서다. 그는 “예전에는 부담 없이 인력을 추가 투입했는데 이제는 인건비를 잘 못 맞추면 힘들어 전체 물량과 팀 위주로 인건비를 계산하고 있다”며 “셰프가 메뉴에만 신경 쓰고 인건비 같은 부대적인 것에는 신경을 덜 써야 하는데 인건비 때문에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 때문에 대기업의 가공식품만 유통이 되고 신선식품 시장은 자칫 고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어 셰프는 지금처럼 힘들 때도 없다고 토로했다. 예전에는 직원들과 원만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인건비 상승으로 원가를 맞추느라 서로 신경 쓰고 서로 힘들다는 것이다. “한 지붕 두 가족이 됐어요. 우리 모두 식재료와 메뉴에 신경 써야 하는데 서로 눈치를 많이 보게 됐어요. 그들은 얼마를 더 주장해야 하는지, 저는 얼마나 수용할 수 있는지를 신경 쓰느라 같이 일하면서도 집중이 안 되는 거죠.” 모든 업장의 직원들과 오너 셰프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그는 한국에 정착한 이래 지난 13년간 외식업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진보했다. 테이크아웃과 가정간편식 제품을 하면 좀 나아지겠지, 이만하면 되겠다고 하면 법은 또 바뀌었다. 한국의 법 때문에 끝없이 진보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외식업계에서 요리사들이 에오를 좋아하는 것은 매번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는 아이템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적응하면 또 다른 게 생기고, 이를 반복하다 보니 13년 내내 새로 오픈하는 것처럼 힘드네요.” 사진=송은석기자

약력

△1970년 서울 △1997년 이탈리아 유학 △2000~2003년 이탈리아 미슐랭 식당 근무 및 밀라노 포시즌스 부문 조리장 △2006년 청담동 리스토란테 에오 오픈 △2014년 테이크아웃 브랜드 구르메에오 론칭 △2017년 이탈리안 뽀모 공방 오픈, 간편식 뽀모 론칭

심희정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