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여성은 광고의 가장 큰 타깃인데 왜 이들을 위한 광고는 중년 남성이 결정하고 만들까’
이 문제의식 하나로 광고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이가 있다. 최근 우주까지 배달을 한다는 내용의 배달 어플리케이션(앱) ‘요기요’ 광고를 만든 셜록의 배은지(29·사진) 대표다.
화성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 울프 슈뢰더(유튜브 크리에이터 ‘대한미국놈’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식량이 떨어지자 구조 요청을 보내는 대신 배달음식을 시킨다. ‘짜장면 시키신 분’ 외치며 마라도 상공의 헬기까지 찾아왔던 배달원이 등장하는 옛 CF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식상하게 흘러가나 싶지만 마지막 한 방이 있다.
배달 시간 4개월 21일에 걸쳐 화성에 무사히 도착한 부대찌개의 가격은 할인에 할인이 거듭돼 3,000원 남짓에 불과했다.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배달비만 몇십억 될 텐데 말도 안 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폭소했다. 경쟁사에 비해 특별한 존재감이 없었던 요기요를 단숨에 ‘우주 최강 할인 혜택’으로 각인시켰다.
배 대표는 광고의 흥행 비결을 이렇게 꼽았다. “1위인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주제를 골랐죠. 특히 요새 흐름이 유튜브를 기반으로 한 멀티채널네트워크(MCN)에 있잖아요.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 울프 슈뢰더를 모델로 기용해 그의 이야기도 담은 것도 주효했어요”
실제로 슈뢰더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고 특히 부대찌개에 사족을 못 쓴다. 화성에서 구조 요청 대신 부대찌개를 시켜먹는 것에 누리꾼들이 공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똥으로도 마케팅을 하더라’
광고 콘텐츠 제작에는 일면식도 없던 배 대표가 광고주들에게 알려진 건 바로 ‘똥’ 때문이었다. 그는 2015년 정부가 주최한 창업 공모전에서 여성들의 대변을 관리해주는 앱 ‘응가의 노예’를 아이디어로 내놨다. 배변 활동은 건강에 직결되는 문제인데 다들 쉬쉬할 뿐 제대로 관리하는 서비스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자신을 비롯한 20대 여성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지만 투자자들에게는 부차적인 서비스로 비칠 뿐이었다. 이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 전시회를 여는 방법을 택했다.
“전시회에서는 절대로 똥을 더럽게 그리지 말자는 게 원칙이었어요. 젊은 여성들이 즐길 수 있게 최대한 귀엽고 예쁘게 즐거운 느낌을 가져가게끔 하자는 거였죠. 그 결과 지금의 셜록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죠”
2016년 4월 서울 마포구 홍대 서교예술센터에서 열린 ‘응가대전’은 여러 방면에서 실험적이었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똥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스타트업들도 부스를 차렸다. 대다수가 여성이었던 관람객들은 똥을 귀엽게 그린 전시품들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LG생활건강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전시회 콘텐츠 기획 능력을 보고 광고를 의뢰한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 홍보대행사에서 일했던 경력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막힘이 없었다. 당시 인터넷 공간의 화장품 관련 커뮤니티마다 ‘피르가즘(피지를 짜는 쾌감을 오르가즘에 빗댄 합성어)’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 많았을 때였다. 피르가즘에 착안해 피지들의 출산과 번식, 소멸과정을 다룬 ‘피지의 왕국’ 광고를 내놨다. 과거 KBS ‘동물의 왕국’ 스타일이 눈에 띄었던 이 광고는 20대∼30대 소비자들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유튜브 뷰티 부분에서 1위에 올랐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합산 조회수가 800만에 육박하는 등 작은 회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결과를 냈죠”
LG생활건강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2016년 6월 급하게 150만원의 자본금으로 문을 연 회사는 2년 뒤 매출 30억 규모로 성장했다. 그 사이 성사된 프로젝트는 41개로 불어났다. 디지털 광고 업계에서 10년 이상의 업력을 자랑하는 회사가 많은 상황에서 셜록의 성장은 눈에 띄었다.
셜록은 ‘가성비 갑’ 회사로 꼽힌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유튜브의 경우 광고의 조회 수가 늘어날수록 뷰당 광고주가 내야 할 비용이 내려가는 구조”라며 “똑같은 비용을 지불하고도 더 높은 조회수를 보장해준다고 검증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기요 광고 영상도 유튜브 상에서 300만 뷰를 넘기며 2018년 상반기 유튜브 인기 광고영상으로 상도 받았다.
그에게 좋은 광고란 무엇인지 묻자 오히려 역질문이 들어온다. “최근에 감동적인 내용으로 기억 남는 광고가 있었어요?”
확 떠오르는 게 없어 대답을 못 하자 그는 “전 웃긴 광고가 제일인 것 같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이 공유하고 입소문을 내는 광고는 웃음을 유발하는 광고지, 감동적인 광고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래서인지 그는 광고 반응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X친’이라는 댓글이 달릴 때 더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더 들어가 봤다. 사람들이 재밌다고 하는 광고는 도대체 뭘까. 그는 “사람들이 ‘말이 안 되는데 말이 되게 하네’하고 느낄 수 있는 광고”라며 “말도 안 되는 상황 설정을 주면서 ‘이렇게도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구나’하고 무릎을 치게끔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건 다 한다. 힙하다는 플레이스에는 빠지지 않고 가며 드라마, 영화도 끊임없이 본다. 스스로 콘텐츠 덕후라고 한다. 유튜브에서 구독하는 채널이 100여개가 넘는데 이를 다 챙겨본다. 인터뷰 중간에 잠깐 화장실을 다녀올 때조차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사진이 너무 특이하지 않냐며 물어봤을 정도다. 학창 시절에도 수업을 들을 때면 음악을 듣거나 만화책을 보거나 콘텐츠 소비를 멈춘 적이 없어 선생님은 부모님에게 과잉행동장애(ADHD)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과도한 콘텐츠 소비가 자산이다.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콘텐츠부터 B급 정서의 콘텐츠까지 모두 소화가 가능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게 된 것.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잘 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만드는 게 자연스럽고 좋은 광고죠. 저는 사람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안다는 건 광고쟁이에게 큰 재능이다. 타고난 감각이 없더라도 아이디어 내는 법 정도는 노하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할 때 제가 만들려는 광고의 타깃과 해당 제품군을 좋아하는 소비자가 있는 커뮤니티에 간다”며 “소비자들만 쓰는 은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라고 말한다. 과거 ‘피르가즘’을 광고에 녹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알다 보니 그의 주변에는 특이한 일도 많이 생긴다. 과거 직장을 그만두고 작업실을 겸해 카페를 운영해보자는 생각으로 카페 주인이 됐다. 하지만 카페 일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그렇게 카페를 그만두게 된 사연을 담아 ‘1년 만에 카페를 그만두는 이유’라는 주제의 글을 브런치 플랫폼에 연재했다. 이후 글이 화제가 돼서 당장 팔아도 이상하지 않았던 카페를 권리금까지 받고 팔게 됐다.
그런 그가 최근 새로운 도전으로 화장품 브랜드 론칭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기초 제품에 관심이 많은데 내가 마음에 들 정도의 화장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한다. 광고쟁이가 웬 화장품 사업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는 “화장품 광고 의뢰가 수없이 들어와도 마음에 드는 업체가 없어서 웬만하면 거절을 했다”며 “마음에 차는 업체가 나오길 기다리느니 직접 차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화장품은 제조 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기반으로 한다면 화장품도 콘텐츠 사업이라는 생각이다.
“제가 그동안 어떤 제품을 포장해 광고라는 형태로 내놨다면 이제는 화장품을 만들어서 소비자랑 소통하는 거죠”
새로운 도전의 연속인데 두려움은 없을까.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저는 망해도 기대가 돼요. 망한 뒤에는 망한 얘기로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어요”
그의 다음 이야기가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