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다품종 소량생산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창출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이임자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가 명품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고 대량생산 방식에서도 승부를 보기 힘들다면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며 “패스트 패션 시장에 디자인까지 접목해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체제로 간다면 고부가가치를 도모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서는 디자인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뿌리산업’인 소재 분야에서도 기술력을 높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연구위원은 “선진국형 섬유 산업으로 나아가려면 한편에서는 명품·패션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소재개발력을 지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성원 한국섬유소재연구원 원장도 “아무리 설비가 오래됐다고 해도 우리나라 섬유 산업은 오랜 역사를 토대로 상당한 양의 기술을 축적했다”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섬유소재로 명품 브랜드 쪽을 꾸준히 두드리면 중가 이상의 틈새시장을 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진입 장벽이 낮은 범용제품보다는 산업용 섬유, 특수사 등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을 중심으로 ‘킬러 콘텐츠’를 키워나가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기술개발 투자비를 늘리고 있지만 여전히 주요 대형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스판덱스·LMF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제품도 많지만 여전히 탄소섬유 등 산업용 섬유 시장에서는 일본이나 유럽 기업의 기술력에 비하면 부족하다”며 “가격 경쟁에서는 이길 수가 없으니 결국 이런 고부가 제품으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쉽지 않은 것”이라고 짚었다.
전제조건은 4차 산업혁명 업종과의 시너지다. 아디다스의 ‘스피드팩토리’를 벤치마킹해 공급 측면에서 생산혁신을 도모하고 AI와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자 수요를 신속하게 파악해야 패스트 패션 트렌드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변 원장은 “4차 산업혁명으로 원단, 염색가공, 의류 디자인이 한꺼번에 연결될 것”이라며 “빅데이터와 AI를 통해 소비자의 생활 패턴을 파악한 후 스마트팩토리를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의류를 즉각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에서 공공 데이터 플랫폼을 마련해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기술·패션·트렌드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현미 부천대 섬유패션비즈니스학과 교수는 “패션디자이너와 제조업자들이 ‘테크니컬 디자인’을 도모할 수 있도록 디자인 정보 플랫폼을 마련하는 등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패스트 패션에서는 많은 디자인을 빠르게 제공하는 게 더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공공 부문에서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우일·박성호기자 vit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