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장기간·고강도 軍대체복무 추진- 반대

'징역형 대체 형벌'로 또 다른 차별 불러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종교적 신념 등에 의한 병역거부자에게 부여할 대체복무의 기간·강도를 놓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며 국회가 내년 말까지 법을 개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의 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있지만 대체복무제가 병역회피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며 현역병이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수준의 기간과 업무 강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방부는 내년 2월까지 구체적인 대체복무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장기간·고강도의 대체복무 찬성 측은 복무기간이 현역병의 최소 2배 이상이 돼야 하고 힘든 업무를 규정해야 병역기피자의 악용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현역병보다 지나치게 긴 복무기간과 고강도 업무는 징벌적이며 그 자체로 또 다른 차별이고 위헌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박한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지난달 28일 대체복무제 규정이 없는 병역법이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다. 1939년 한반도에서 첫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나온 뒤 80년, 건국 이후로는 1953년 한국전쟁 중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이래 66년 만이다. 국회는 2019년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야 한다. 병무청 역시 제도가 마련되기 전까지 병역거부자의 입영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마련은 이제 필연이 됐다.

국회에는 16대 국회 때부터 대체복무제 마련을 위해 입법을 시도해온 의원들이 있었으나 법안은 번번이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20대 국회에서는 전해철·박주민·이철희 의원 등이 법안을 제출해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냄에 따라 대체복무제를 어떤 방식으로 도입할 것인가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상황이다.



대체복무제 도입의 원칙은 이미 국내외에서 여러 번 언급된 바 있다. 유엔은 1980년부터 병역거부에 따른 대체복무가 형벌의 목적으로 마련돼서는 안 된다고 각국에 권고해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국회와 국방부에 병역거부 권리 인정과 대체복무제 도입을 권고하며 ‘양심의 자유와 병역 의무가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주문한 바 있다. 대체복무제의 핵심은 양심의 자유를 인정할 수 있는 병역 이행방식을 마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징역형을 대체할 형벌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양심적 병역거부를 범죄화하며 고강도·장기간의 대체복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장이 지금까지 양심적 병역거부를 반대해온 논리의 연장선에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되면 너도나도 대체복무를 신청할 텐데 누가 군대에 가겠느냐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대체복무에 고강도 업무를 부여하고 기존의 병역기간보다 2배, 많게는 4~5배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는 것이다. 대체복무가 가혹한 조건이어야 함부로 ‘양심’을 앞세워 병역을 거부할 수 없다는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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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서는 우리보다 일찍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대만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만은 대체복무제 도입 초기 대체복무자의 정원을 5,000명으로 정했으나 신청자가 1만여명이나 몰려 정원을 1만명으로 조정했다. 그런데 몇 년 뒤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사람은 다시 5,000명 선으로 줄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인정된다 해서 누구나 병역을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명확한 사례다. 대체복무는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대체복무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영역에서 이뤄져야 한다. 사회 공공성 향상에 기여해야 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영역이어야 한다. 특히 병역거부자들이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양심에 따르고 있는바 시민의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영역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업무의 난도가 높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병역기피자들과 동일선상에 놓고 ‘힘든 병역을 피해 쉬운 일을 해보려는 사람’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

헌재의 이번 판결은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진일보시켰다. 이러한 판결의 취지에 걸맞게 양심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병역거부자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식으로 대체복무제를 마련해서는 안 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입대를 거부하는 것이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어 감옥에 1년6개월간 수감하는 사회적 낭비는 끝났다.

대체복무는 우리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병역의 형태다. 대체복무자에게 병역에 비해 과도하게 긴 복무기간이나 지나치게 고강도인 업무를 부여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차별이며 위헌 시비로 이어질 소지도 다분하다. 헌법이 총을 드는 것만이 병역이 아님을 인정한 만큼 그에 걸맞은 진보적인 대체복무제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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