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트럼프가 믿는 유일한 언론 '폭스'

트럼프, 영국 순방 때 CNN 질문 거부해 구설수 올라

"가짜뉴스 질문은 받지 않는다"며 폭스에 질문권 줘

트럼프, '폭스와 친구들' 코너 출연하며 폭스와 밀월

백악관 입성 후 폭스에 인터뷰 기회 주며 언론 편식

백악관 공보국장, 국무부 대변인에 폭스뉴스 출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부분의 언론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우는 반면 유일하게 칭송하는 언론이 있다. 폭스뉴스다. 자신의 언행과 정책에 질책하는 뉴스에는 눈과 귀를 닫는 반면 보고 싶고 듣고 싶은 뉴스에만 주목하는 그의 언론관이 도를 지나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21일 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영국 순방 때 기자회견에서 진보 매체의 질문을 거부한 뒤 파장이 가시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지방관저 앞에서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진보매체 소속 기자를 향해 ‘가짜뉴스’라고 비난하며 질문을 받지 않았다.

크리스틴 웨커 NBC 기자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동맹국에 대한 비판으로 헬싱키 미·러 정상회담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리한 입장에 서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은 매우 정직하지 않은 보도”라며 “물론 CNN보다 더 나쁜 NBC방송이니까 그런 일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CNN과 NBC 등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써온 언론사들을 동시에 공격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첫번째)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요청하는 기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버킹엄셔=AP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왼쪽 첫번째)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요청하는 기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버킹엄셔=AP연합뉴스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은 CNN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짐 아코스타의 질문을 거부했다. 아코스타 기자는 “대통령께서 CNN을 공격했기 때문인데, 질문해도 되겠느냐”고 물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아코스타 기자 옆자리에 있던 존 로버츠 폭스뉴스 기자에게 질문권을 줬다. 아코스타 기자가 계속 질문하려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CNN은 가짜뉴스다. 나는 CNN한테서는 질문받지 않는다”면서 “폭스의 로버츠, 진짜뉴스로 갑시다. 질문하세요”라고 말했다.


두 정상이 기자회견을 끝내고 퇴장하려 할 때 아코스타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푸틴 대통령에게 미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가”라고 외쳤고 트럼프 대통령은 뒤돌아서 “그렇다(Yes)”고 답했다.

관련기사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 거부 사태는 기자들 간 갈등으로 이어졌다. 아코스타 기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질문권을 거부하지 않고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문제가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미·러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지 질문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언론 공격을 도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제이크 태퍼 CNN 앵커는 트위터를 통해 “오바마 정부 때 여러 기자들이 폭스의 백악관 출입기자를 방어한 것을 기억한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보 신문 워싱턴포스트(WP)는 “CBS와 CNN을 거친 베테랑 로버츠가 마이크를 타사 기자에게 넘기는 등의 방법으로 아코스타를 옹호하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이 거세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일자 로버츠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짜 뉴스 공격이 나를 국가의 적(enemy of state)으로 만들었다”며 뒷수습에 나섰다. 그는 “NBC의 웨커는 정직하다. 대통령이 웨커를 정직하지 않다고 말한 건 불공정하다. 나는 CNN 출신이다. 훌륭한 기자들이 일하는 이곳을 가짜뉴스로 몰아세운 것도 불공정하다”고 밝혔다.

짐 아코스타 CNN 기자 /헬싱키=UPI연합뉴스짐 아코스타 CNN 기자 /헬싱키=UPI연합뉴스


지난 16일 미·러정상회담 때도,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의 밀월은 계속됐다. WP는 16일 기사에서 “트럼프가 정상회담 후 처음 인터뷰한 곳도, 두번째로 인터뷰한 곳도 폭스”라며 코너만 바뀌었을 뿐 트럼프 대통령이 두 번 모두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꼬집었다. WP는 또 “폭스는 추가적인 보너스도 챙겼다. 폭스는 푸틴과 인터뷰한 유일한 서방 언론”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과 폭스뉴스와의 인연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시작됐다. 폭스뉴스는 2011년 ‘트럼프와 함께하는 월요일 아침’이라는 코너를 시작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을 꾸준히 출연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에도 자주 폭스뉴스에 출연할 뿐만 아니라 아침 일찍 트위터에 폭스뉴스 기사 링크를 게시하고 있다. WP는 연구자료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그가 진행한 TV 인터뷰 가운데 폭스가 60%를 차지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폭스와 친구들’에 출연한 횟수만 ABC, CBS, NBC 인터뷰를 합친 수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빌 샤인 백악관 공보국장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빌 샤인 백악관 공보국장 /워싱턴DC=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과 행정부 곳곳에 폭스뉴스 출신자들을 앉히며 노골적인 폭스 사랑을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일 빌 샤인 전 폭스뉴스 공동대표를 백악관 공보국장에 임명했다. 샤인 국장은 폭스뉴스 앵커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협력자로 유명한 숀 해니티와 오랜 친분을 이어왔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도 폭스뉴스 앵커 출신이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역시 폭스뉴스 해설자로 활발하게 활동한 바 있다.


김창영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