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게임 산업 탄생의 배경에는 ‘PC방’이 있다는 설이 회자된 때가 있었다. 근거가 없지 않다. 세계 최초로 초고속인터넷망이 전국에 깔리며 멀티미디어 게임이 가능한 환경이 갖춰진 것이 게임에 대한 수요를 촉발해 결국 산업 전체를 성장시켰다. 올해 2월 우리나라는 평창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올림픽에서 KT가 세계 최초로 구축한 5G 네트워크도 주목을 받았다. 5G 네트워크는 초고속(eMBB)·초연결성(mMTC)·초저지연(URLLC)이라는 특성을 바탕으로 사회·경제 전 분야에 4차 산업혁명을 촉발하는 핵심 인프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에 5G 전국망이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에서 상용화된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한민국 전국에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반이 구축됨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 통신사가 5G를 도입한다 해도 전국망을 구축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리드타임이야말로 우리에게 다시 없을 천재일우의 기회다. 초고속인터넷망이 대한민국 게임 산업의 밑거름이 됐듯 5G 전국망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세계적인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탄생의 탄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밝지 않다. 116대64대3.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한국의 유니콘 기업 숫자다. 우리의 척박한 스타트업 토양을 직관적으로 말해주는 수치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돼 유니콘 기업이 나오기 위해서는 기술 및 인력 경쟁력, 충분한 수요 창출이 가능한 내수시장, 성공적 투자 회수를 위한 금융 인프라 등이 갖춰져야 하는데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특히 국내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술형 스타트업으로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둬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5G 전국망의 기회를 극대화해 선도적 기술을 축적할 수 있는 분야는 어떤 것이 있을까. 다양한 산업 분야 중에서도 5G 네트워크 인프라가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분야는 자율주행과 원격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율주행 분야는 현재 차량에 부착된 센서와 카메라를 기반으로 주행 상황을 판단하는 SA(Stand Alone) 방식으로 실증되고 있으나 센서 너머의 장애물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가 존재한다. V2X(vehicle to everything communication·차량사물통신) 기술은 주위 차량을 비롯한 모든 개체와 연결돼 보다 안전한 자율주행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그렇다면 V2X 분야에서의 기술적 리드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은 자율주행차량이 확산되기 전에 데이터 기반의 V2X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공공 분야의 폐쇄회로(CC)TV 데이터, 개별 차량의 내비게이션 주행 데이터와 블랙박스 영상정보, 지방자치단체별로 구축한 지능형교통체계(ITS) 정보 등을 한데 모아 플랫폼화하고 해당 데이터를 융합·분석해 안전운행을 보조할 수 있는 다양한 서비스를 개발해나간다면 궁극적으로는 실시간 V2X 환경에 가까워지리라 생각한다.
원격의료 분야는 제도적 이슈의 해결이 선행돼야 하는 분야다. 하지만 응급 상황이라면 제한적으로 허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통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1위는 암, 2위는 심장 질환, 3위는 뇌혈관 질환이다. 2위와 3위 모두 응급 상황과 관련된 질병이다. 5G 전국망을 기반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끊김 없는 초고해상도 화상진료가 가능해진다면 실시간 응급처치를 통해 응급 환자들의 생존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5G 전국망을 활용한 의료계 스타트업들의 화상 원격진료 장비 및 솔루션 개발 활성화가 필요하다. 그렇게 기술을 축적한 스타트업은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을 선도하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을 국가적 기회로 전환하기 위한 정부의 전방위적 노력에 공감한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선택과 집중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국내 이동통신 3사는 내년 3월에 전 세계 최초로 5G 전국망을 상용화할 예정이다.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