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로 지난 6~7일 평양에서 열린 고위급 협상 후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 나왔다”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요구가 강도 같다면 전 세계가 강도다. 무엇을 달성해야 할지는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평양 회담에서 북미가 서로 요구하는 내용에 격차가 있어 이러한 공방이 벌어졌다는 것은 짐작이 된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은 왜 15개 안보리 이사국이 결정한 제재 결의를 ‘전 세계’의 행동이라고 했을까.
유엔 헌장 25조에는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의 결정을 수락하고 이행하겠다고 동의한다”고 돼 있다. 주권국가는 조약처럼 자신이 구체적으로 동의한 결정에 따라서만 구속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포괄적 동의는 매우 예외적이다. 2차 대전의 결과로 탄생한 유엔이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들에 대해 강제조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요가 반영된 것이다. 그와 함께 5대 승전국은 안보리의 어떤 결정도 막을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이 됐다. 같은 유엔 회원국인데 어떤 국가는 자신이 한 번도 참여해본 적 없는 안보리의 결정을 무조건 이행할 의무가 있고 어떤 국가는 국제평화 유지에 필요한 결정도 자기 국익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막을 수 있다. 주권평등 원칙의 열혈 옹호자라면 이런 제도가 ‘강도 같다(gangster-like)’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유엔에서 탈퇴하는 것 외에 의무를 벗어날 방법은 없다.
이처럼 안보리가 결정한 비핵화를 미국이 요구하는 것임에도 북한 입장에서 ‘강도같이’ 느껴진다면 그것은 과거 1994년 제네바 합의나 2005년 9·19 공동성명 협상 때와 다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 두 개의 협상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핵 활동도 무기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준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6차례의 핵실험과 8차례의 안보리 제재 결의를 거친 현재 상황은 다르다.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를 요구한 안보리 결의는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하는 국제법이 됐고 북한은 그것을 반복적으로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미국이나 우리나라가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혜택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과거의 협상처럼 ‘행동 대 행동’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핵확산금지조약(NPT)’ 자체를 불공평하다고 할 수도 있다. 왜 1967년 시점에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5개 국가만 합법적인 핵보유국이고 다른 모든 나라는 핵무기 불보유를 약속해야만 원자력 기술을 획득할 수 있는가. 이처럼 불공평한 것 같은 조약에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가입하고 1995년에는 무기한 연장이 합의된 것은 결국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즉 5개의 핵보유국만 인정하는 조약이 불공평하다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국가는 모두 보유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일까. 그것이 더 공평할지는 모르지만 수십 개의 핵보유국이 대치하는 세상이 더 안전하고 평화로울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강대국 중심으로 국제 사회의 질서가 유지되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저항한 국가나 지도자들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중에는 비동맹의 리더나 약소국의 대변인으로 국제 사회에 이름을 남긴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강대국 중심의 국제 체제에 힘으로 도전해 성공한 경우는 없다고 봐야 한다. 국내 사회와 달리 법의 지배가 분명하지 않고 국가 간의 상호 견제와 합의에 의존하는 국제 사회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통해 질서를 유지하며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북한이 ‘강도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협상 전략이든 근본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든 아니면 잘못된 상황 인식의 표출이든 간에 지금은 현실을 직시한 합리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반도 평화와 안보는 물론이고 우리 민족 전체의 장래를 위해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