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케냐, 탄자니아 르포]도로 등 SOC현장마다 '붉은 자본' ...한국 '검은대륙' 개척에 최대 위협

■아프리카 파고드는 中자금 들여다보니

중국 노림수는 결국 자원...阿 "한국이 미래파트너 돼달라"

'中의 SOC 무상 건설 = 독이든 사과' 반감 커져

케냐 "삼성이 현지에 제조공장 세우면 어떻겠냐"

자원 수탈 우려커지며 한국을 대안으로 인식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첫 아프리카 순방국인 세네갈의 다카르 국제공항에서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함께 이동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집권 2기 첫 순방 대륙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은 자원외교·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다카르=신화연합뉴스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첫 아프리카 순방국인 세네갈의 다카르 국제공항에서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의 환대를 받으며 함께 이동하고 있다. 시 주석이 집권 2기 첫 순방 대륙으로 아프리카를 선택한 것은 자원외교·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다카르=신화연합뉴스



“중국인들은 케냐에 엄청난 돈을 가지고 옵니다. 한국 사람들도 돈을 준비해야 합니다.”

21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만난 레바논 출신 사업가는 기자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더니 “한국”이라고 답하자 대뜸 큰 목소리로 ‘차이나머니’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도 돈을 많이 가져와야 할 것”이라는 말을 서너 차례 반복했다. 사업차 나이로비를 자주 방문하며 체감하는 ‘차이나파워’는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외국인 기업가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이 아니더라도 나이로비를 다니다 보면 사회 시스템 전반에 깊숙이 파고든 중국의 영향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나이로비 곳곳에서 최신 공법으로 건설 중인 고층빌딩 대부분은 차이나머니를 먹으면서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다. 중국 업체의 고급 주거시설 분양 홍보광고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건물뿐이 아니다. 케냐의 도로·철도 등 수송 인프라 개선사업에서는 중국이 이미 압도적 우위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로비 시내에서 30여㎞ 정도 떨어진 저개발지역 무구가는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운데 도로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현장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벽면에 큼지막하게 적힌 붉은색 스와힐리어 문구. 중국이 해당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철도도 마찬가지다. 동아프리카의 물류허브로 불리는 케냐의 항구도시 몸바사와 수도 나이로비를 잇는 철도구간은 중국이 완공했다. 구간 길이는 480㎞로 전체 공사는 중국 기술과 장비·인력으로 진행됐다. 이로도 부족해 중국 정부는 아프리카에 더 적극적으로 구애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9일 아랍에미리트(UAE)·세네갈·르완다·남아프리카공화국 등 4개국 순방에 나섰다. 시 주석은 방문기간에 대규모 경제지원이라는 선물 보따리를 풀어 아프리카를 중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수십년간 중국과 아프리카는 동고동락한 운명공동체로 향후 협력을 증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의 물량 공세를 아프리카 현지인들이 마냥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익명을 요청한 케냐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국이 이곳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지만 결국 노리는 것은 아프리카의 자원”이라며 다소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남아공의 망간·백금류·형석, 기니의 보크사이트·알루미늄류, 콩고민주의 코발트, 짐바브웨의 세슘 등은 모두 매장량에서 세계 1위다. 또 르완다는 텅스텐, 케냐는 금홍석과 티탄 철광을 땅속에 가득 품고 있다. 아프리카의 원유 매장량은 1,258억배럴로 전 세계 매장량의 7.6%를 차지한다. 무섭게 경제성장을 이뤄온 중국이 아프리카의 자원에 눈독을 들인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중국을 바라보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속내는 편치 않다.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당장 돈이 필요하지만 미국·유럽 등 서구권 국가의 은행들은 높은 리스크를 이유로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결국 대안은 차이나머니다. 2001~2010년 중국이 아프리카에 빌려준 돈은 627억달러로 세계은행의 대출액보다 125억달러가 많았다. 특히 아프리카 각국의 자원과 인프라를 ‘빅딜’하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다. 콩고에 국회의사당·운동장·병원·도로망 등을 무상으로 지어주고 대신 구리와 코발트를 받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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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국가들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중국인의 숫자에도 불편해한다. 뉴욕타임스(NYT) 기자 출신이자 과거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대학의 교수였던 하워드 프렌치는 아프리카로 이주한 중국인이 100만명도 더 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현지 문화와 동화되지 않고 중국 특유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아프리카 국가들의 속앓이 대상이 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대통령궁을 방문,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나이로비=연합뉴스이낙연 국무총리가 20일(현지시간) 케냐 나이로비 대통령궁을 방문,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나이로비=연합뉴스


아프리카 국가들은 당장 차이나머니가 절실해 중국과 우호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자원수탈과 중국 인구 급증에 대한 대안으로 새로운 파트너를 찾으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나라 중 한 곳이 한국이다. 중국 같은 막강한 자본력은 없지만 현지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현재의 그들과 비슷한 경제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대표적인 경제대국이 된 한국의 성장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크다. 또 인구나 국토 규모 등에서 중국은 비현실적인 모델인 반면 한국은 큰 차이가 없는 데서 오는 편안함이 있다는 게 현지인들의 설명이다. 게다가 중국처럼 도로나 건물을 지어주는 일회성 지원이 아닌 농업기술 전수, 생활개선 사업 등을 통해 당장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는 한국형 지원, 포용적 통상에 대해 호평한다.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이 이낙연 총리를 만나 “30년 전에는 한국과 케냐가 같은 레벨의 발전단계였는데 한국은 이미 선진국에 진입한 반면 불행히도 케냐는 거버넌스 문제로 오히려 퇴보했다”며 “케냐가 뒤처진 이유를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싶다”고 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또 케냐타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한국의 고급기술을 다 배울 수는 없다”며 “조립 같은 단순기술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이곳에 와서 조립작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지프 무체루 케냐 정보통신장관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현재 자유무역지대(FTA)를 추진 중인 만큼 아프리카 각국에 대해 개별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아프리카를 하나의 큰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업들이 접근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예를 들어 삼성전자 같은 한국 기업이 아프리카에 제조공장을 세우고 아프리카 현지맞춤형 전자제품을 생산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덧붙였다. 경제성장의 장기 파트너가 돼달라는 제안이다.

케냐 남쪽 아래에 위치한 탄자니아도 마찬가지다. 탄자니아 정부는 중국의 무상 철도건설 제안을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케냐처럼 도로·철도 인프라 건설이 시급하지만 당장의 현실만 좇다가 경제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반해 한국에는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1일 오후 이낙연 총리가 다르에스살람 국제공항에 내리자 카심 마잘리와 탄자니아 총리가 직접 이 총리를 영접했다. 대통령이 방문해도 장관급이 나오는 것이 외교 관례이지만 이례적으로 총리가 총리를 맞이한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를 그만큼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준 탄자니아 정부의 행보였다.
/나이로비·다르에스살람=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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