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본격적인 글로벌 환율전쟁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서 가뜩이나 미중 무역전쟁의 파장에 대한 우려에 휩싸여온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문제 삼으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뒤흔든 데 이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강달러 영향마저 중국과 유럽연합(EU) 등의 ‘환율조작’ 탓으로 돌리며 환율전쟁의 포문을 연 가운데 5조1,000억달러 규모의 세계 외환시장이 엄청난 충격에 휩싸이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금리 인상에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동안 중국과 EU 등은 통화 가치를 조작하고 금리를 낮췄다”면서 “미국의 경쟁력을 빼앗는 것으로 늘 그렇듯 불공정한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EU 등에 대한 무역적자 확대에 관세 부과로 대응하고 있지만 강달러가 지속되자 미국의 수출 경쟁력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을 우려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 중국 위안화가 계속 절하되며 환율조작 의혹을 제기했지만 중국이 20일에도 위안화를 추가로 절하면서 1년 만에 위안화는 달러 대비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자 보다 노골적으로 ‘환율조작’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일 위안화의 달러당 기준환율을 전날보다 0.90% 높인 6.7671위안으로 고시했다. 하루 낙폭으로는 2년 내 최대 수준으로 위안화 가치는 7거래일 연속 떨어졌다. 위안화 환율은 이날 장중 달러당 6.8위안을 기록하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위안화 기준환율의 2% 내외에서 움직이는 역내 위안화 환율이 지난해 6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면서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위안화 가치를 고의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붙인 환율조작 논란은 아르헨티나에서 열리고 있는 주요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회의로까지 이어졌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21일 G20 회의에 앞서 기자들에게 “위안화 약세가 중국에 불공정한 이득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면서 “위안화 환율조작 여부를 자세히 검토할 것”이라며 중국의 환율조작 의혹을 정조준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아소 다로 재무상은 한발 더 나아가 첫날 회의석상에서 “선진국에서 금융정책 정상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중국을 포함한 신흥국 통화 하락이 세계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될 수 있다”면서 위안화 약세에 대한 중국 측의 설명을 촉구했다.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해나가자 세계 금융시장의 긴장감은 한층 커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간 환율전쟁이 전 세계 외환시장뿐 아니라 주식, 원유, 신흥국 자산 등 다방면에 걸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환율전쟁이 촉발되면서 위험자산과 유가 가치가 급락하고 러시아 루블, 콜롬비아 페소 등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의 통화 가치가 폭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환율전쟁은 세계 시장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올 수 있다”며 “그 결과는 참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원·달러 환율도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달러·위안화 ‘통화전쟁’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탓에 가파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월가의 저명한 환율 전략가인 옌스 노르드빅 엑산테데이터 창업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양상이 바뀌었다”면서 “전 세계의 환율과 관련된 시장에 균열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건은 위안화 가치가 미 정부의 사실상의 구두개입과 환율전쟁 우려 속에 추가 하락세를 이어갈지 여부다. 중국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근의 가파른 위안화 약세가 무역전쟁을 의식한 시진핑 지도부의 의도적인 방치 결과인지 아니면 전 세계를 상대로 한 미국의 강력한 통상 압박에 따른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 탓인지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쑨궈펑 인민은행 금융연구소장은 “최근 위안화 약세는 외부의 불확실성에 따른 시장 반응의 결과”라며 “중국은 자유무역과 규칙을 기초로 한 국제준칙을 견지하고 있어서 위안화 환율을 수단으로 무역마찰에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 최근의 위안화 약세가 당국의 의도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했지만 가파른 환율 변동에 대한 당국의 방치는 위안화 가치 하락을 수출 확대의 촉매재로 활용한다는 의혹을 받으면 트럼프 미 대통령의 환율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비판이 중국 내에서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노르드빅 창업자는 블룸버그 통신에 “인민은행이 달러 대비 위안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저지하고 지금의 6.8위안 수준에 묶어두려는 시도를 할지가 (향후 환율전쟁 향방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뉴욕=손철특파원 베이징=홍병문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