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조립시설 해체 개시로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다시 변곡점을 맞이하는 가운데 비핵화의 관문 중 하나인 한국전쟁 종전선언의 추진 여부를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시기를 놓고 9월이 가장 유력시되는 가운데 8월설, 12월설 등도 정치권과 외교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당사국에 대해서도 3자(남북미), 4자(남북미중), 양자(남북) 등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도 아직 구체적인 확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5일 춘추관에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종전선언의) 형식과 시기 모두 열어놓은 상태로 관련한 논의를 당사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급적 조기에 종전선언이 이뤄졌으면 하는 게 우리 정부의 바람”이라면서도 “결론이 어떻게 될지는 열려 있다”고 말했다. 종전선언 시기가 8월로 앞당겨지고 4자 형태로 될지에 대해서는 “당사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소개했으나 구체적으로 당사국이 3자인지, 4자인지는 특정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8월 4자 종전선언 가능성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는 이유는 최근 다소 교착 상태에 빠졌던 비핵화 협상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차원으로 해석된다. 다만 8월에 정상 간 종전선언이 이뤄지기는 쉽지 않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종전선언이 이뤄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가 나오거나 향후 핵 동결 및 폐기에 대한 로드맵이 어느 정도 구체화돼야 하는데 앞으로 한 달여 내에 이를 구체화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월에 굳이 종전선언과 관련한 당사국 간 발표가 단행된다면 정상 간 레벨이 아닌 외교장관 레벨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8월에 일단 당사국 외교장관들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됐던 연내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재확인하고 이후 9월 유엔총회에서 정상급 레벨의 종전선언 추진을 단행한다는 시나리오다.
현재로서는 9월 마지막 주 무렵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서 3자나 4자 간 형식으로 정상들의 선언이 이뤄지는 방안이 가장 유력시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종전선언을 하기 위해 미국과 조율을 거쳐야 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북과 중국 상호적인 의견 교환을 고려하면 9월 유엔총회 때 종전선언을 하는 게 가장 유리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종전선언 준비의 프로세스상 남북미중 4자가 만나야 하기 때문에 그 4자 간에 단순히 ‘전쟁은 끝났다’라는 선언에 그칠지 아니면 당사국 간 (영구적 평화번영을 위한) 신뢰구축 논리를 반영할지가 선언의 시기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떤 경우가 됐든 북한이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종전선언 자체는 국제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정치적 행위이자, 외교적 수사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는 평화협정이라는 조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마중물 성격이 짙기 때문에 북한의 신뢰성 있는 비핵화 이행 없이 한미가 섣불리 나서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같은 선행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지연된다면 종전선언이 9월 이후 연말께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우선 국립외교원 교수는 “종전선언이 9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보다 뒤에 이뤄질 수도 있다”며 “미국 입장에서는 종전선언을 하면 평화협정 논의로 연결되고 북중의 군사압박 해제 압력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은 기본적으로 평화협정을 서두르겠다는 생각이 없다”며 “종전선언을 조기에 해버리면 (평화협정 프로세스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이 여유를 부릴 경우 일단은 연내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연말께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 간 선언을 먼저 한 뒤 이후 다시 다자간 종전선언을 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12월에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세안 회의 때 남북 정상이 특별 초청을 받아 현지에서 선언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외교가 일각에서 나온다. /민병권·송종호 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