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쟁업체에 액정표시장치(LCD) 생산과 실리콘 가공 분야의 핵심기술을 빼돌린 유출범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업계에서 중국이 물량공세와 기술 추격으로 한국의 입지를 위협하는 가운데 나온 사건이라 더욱 눈길이 쏠린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업무상 배임으로 이직 전후 기술과 도면정보 등 영업비밀을 빼돌린 M사 전 부사장 류모(57)씨를 구속하고 C사 전 과장 김모(44)씨를 검거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들과 공모한 중국업체 관계자 2인은 지명수배 상태다.
류씨는 피해 업체 M사에서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15년 중국에 아들 명의로 회사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실리콘 특수가공액 성분과 공정 매뉴얼 같은 핵심기술과 영업정보를 빼돌린 류씨는 수억원의 대가를 챙겼다. 피해 업체에 재직 중인 상황에서 중국 회사를 위해 직접 영업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의 경우 먼저 경쟁업체로 옮긴 선배직원 및 헤드헌터와 접촉한 뒤 이직을 결심하고 설계도면 정보를 e메일로 전달했다. 여기에는 C사의 최첨단 기술인 ‘퓨전(fusion)’ 공법으로 디스플레이용 기판유리를 생산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됐다. 김씨는 기술 유출의 대가로 이직 전 연봉의 두 배인 1억6,000만원의 연봉과 주거비·자동차·통역인, 한국 왕복항공권 등을 약속받았다. 이들은 금전적인 유혹이 컸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C사는 LG디스플레이와 삼성디스플레이의 주 거래처로 LCD 기판유리 제조기술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 본사를 둔 M사의 경우 실리콘 특수소재 시장에서 전 세계 20%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다. M사는 류씨로 인해 입은 피해를 70억원 규모로 추산한다.
중국이 기술을 빼내기 위해 국내 업체에 접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C사는 2013년에도 동일한 중국 경쟁업체에 대해 “퓨전 공법 유출로 손해를 끼쳤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승소한 적이 있다. 당시 재판부는 “C사가 26년간 8,3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기술이 유출됐다”며 “향후 10년간 C사의 기술을 사용하거나 전달하지 말고 2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경찰은 헤드헌터를 비롯해 직원들에게 접근해 범죄를 중개하는 전문 중개인이 추가로 존재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기술 유출 범죄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다. 경찰청 검거 현황을 보면 2009년에는 46건에 불과했으나 2016년 114건, 지난해 140건으로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기술 유출 범죄는 소수의 핵심 관계자가 국가 전체 경쟁력을 저하하고 큰 산업적인 피해를 초래하는 만큼 산업기술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수사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