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환율이 연일 춤을 추는 가운데 최근 원화 가치 변동성이 인도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신흥국보다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변동성 확대는 불확실성을 키워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든 기업의 투자 심리를 더 위축시키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6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25일까지 원달러 환율의 하루 평균 변동률은 0.46%였다. 5월 평균 0.34%에서 0.12%포인트 올랐다. 지난달 15일은 미국이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선언해 무역분쟁이 본격화된 시점이다.
최근 원화 변동성은 웬만한 신흥국보다 크다. 인도네시아 루피화는 같은 기간 0.24%, 인도 루피화는 0.26%의 변동률을 보였다. 인도네시아는 미국 금리 인상과 무역분쟁 등 영향으로 통화 가치가 3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최근 두 달 사이에 기준금리를 세번이나 올린 나라다. 태국(0.27%), 필리핀(0.22%), 말레이시아(0.16%) 등 통화도 우리보다 안정적이었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커진 것은 1차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하기 어려운 외교 공세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엔 주로 중국의 수입품을 공격하더니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모든 자동차 수입국에 고율 관세를 내리겠다”며 전선을 넓혔고 지난 20일(현지시간)에는 주요국들의 환율 조작까지 문제 삼았다. 이후 EU와는 자동차 관세 부과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분쟁의 수위가 왔다갔다 하면서 환율도 같이 출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럼에도 원화의 변동성이 취약신흥국으로 분류되는 나라보다 심하다는 점은 우리 금융시장의 특수한 문제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 무역분쟁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서 분쟁 확대 시 변동성이 커지는 대표적인 나라라는 인식이 큰 탓”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선진국에 비해 금융시장이 작은 편이지만 변동성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외환 당국의 시장 개입 내역이 외부에 낱낱이 공개되는 탓에 당국의 시장 안정화 조치가 위축된 측면도 있다.
문제는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기업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환율이 출렁이면 외화를 팔아야 하는 시점부터 투자 계획까지 제대로 결정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조 연구위원은 “외환 당국이 실시간 모니터링을 통해 환율 안정에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은 물론 대외 악재에도 ‘한국 경제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경제 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능현·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