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트럼프 對 이란 제재 위력 ‘엄습’…리알화 하루만에 13% 폭락

“달러 사려 집 내놔”…이란 외환 시장 ‘패닉’

미국과 협상보다 제재 정면돌파에 무게

환전이 불가능한 테헤란 내 한 환전소./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환전이 불가능한 테헤란 내 한 환전소./출처=연합뉴스 자료사진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복원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 사이에 ‘말 폭탄’이 오가는 등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출처=연합뉴스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복원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 사이에 ‘말 폭탄’이 오가는 등 양국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출처=연합뉴스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이란 경제에 위기가 엄습하고 있다.

경제상황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거시지표인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의 환율은 연일 급등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4월부터 달러당 4만2,000리알을 공식 환율로 고수했지만 29일(현지시간) 오후 기준 시장 거래 환율은 11만리알까지 치솟으면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루 만에 무려 13.4%나 환율이 상승한 것이다.


비단 이날뿐 아니라 리알화의 가치는 연일 사상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외화 대비 리알화의 시장 환율을 게시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달러화 대비 리알화의 환율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 탈퇴를 선언한 5월8일 이후 74% 상승했다. 올해 1월 초와 비교하면 달러화 대비 리알화의 환율은 158%나 올랐다. 올해 들어 리알화의 가치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셈이다.

이란의 외환 위기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던 이란 국영방송도 29일 환율 급등 뉴스를 전할 만큼 이날 이란 외환 시장은 ‘공포’에 빠졌다. 이란 정부는 미국의 제재에 맞설 만큼 외화가 충분하다면서 자국화 가치를 방어하려고 애쓰지만, 시중 여론은 이를 크게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줄어들면 ‘환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는 것이다.

이란중앙은행이 외화를 통제하려고 지난달 23일 소비재 물품 1,339개의 수입을 금지하고 수·출입 업자의 외화 거래를 1대 1 방식으로 직거래하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외화부족 현상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제재를 앞둔 이란 국민의 불안은 단지 심리적 요인으로만 볼 수 없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동시에 이란을 제재한 2012년 이란 국민은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단 한 달 만에 3분의 1로 폭락하는 믿을 수 없는 현실과 제재의 위력을 생생하게 목격한 터다.


다음 달 6일 재개되는 미국의 제재에 EU가 동참하지는 않으나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미국의 단독 제재만으로도 이란이 입을 타격은 상당할 전망이다. 미국은 이란중앙은행의 달러 획득 행위를 제재한 뒤 11월부터는 이란의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천연가스 수출도 막는 사상 최강의 ‘고사 전략’을 예고했다. 2012년에도 미국이 이란산 원유 수출을 제재하면서 이란 경제가 급격히 악화한 때가 있었다.

관련기사



이란은 제조업 기반이 부족해 생활필수품 완제품이나 중간재를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탓에 리알화 가치 하락은 물가 상승으로 직결된다. 이란중앙은행은 22일을 기준으로 연간 물가상승률이 10.2%라고 발표했다. 주요 도시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26.8을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18% 상승했다. 핵협상 개시 직전 미국의 제재를 받은 2013년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40%가 넘기도 했다.

정부의 발표와 시장 거래의 격차가 현저해지면서 불안해진 이란 국민은 너도나도 달러화 구하기에 나섰다. 리알화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집과 차를 파는가 하면 수입에 의존하는 생활필수품을 사재기하는 시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공식환율과 시장 환율의 차를 악용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범죄도 늘고 있다. 이란 사법부는 28일 차를 수입한다는 가짜 서류를 만들어 중앙은행에서 공식환율인 4만2,000리알을 주고 달러를 구해 이를 암시장에 비싼 환율로 판 혐의를 받는 18명을 체포했다. 이들 피의자 가운데는 산업·광물통상부의 고위 공무원도 5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란의 경제 위기에 한정한다면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는 방법이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요구한 협상안에는 탄도미사일과 핵프로그램 영구 포기, 주변국 지원 중단, 이스라엘 위협 중단 등 사실상 백기투항을 받아내는 내용이 포함돼 이란은 어렵더라도 제재를 버텨보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29일 “미국은 다른 나라를 제재하는 데 중독됐다”면서 “몇 달 뒤 그들의 제재가 실패했다는 것을 우리가 증명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런 ‘환란’ 수준의 경제 위기를 맞은 이란 국민은 자국 정부를 향한 불만뿐 아니라 반미 감정도 함께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에 따라 오히려 원유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보수 군부의 강경책이 이란 내에서 힘을 얻고 있다. 이란은 서방과 약속한 대로 핵합의를 지켰는데 미국이 별다른 근거 없이 이란을 겨냥한 뿌리 깊고 막연한 불신과 적대로 이를 탈퇴하고 제재를 다시 부과한다는 것이다.

대학생 쉬라자데(22)씨는 “미국은 제재로 이란을 옥죄면 내부에서 반정부 혁명이나 내전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이를 응원하지만 그건 오산”이라면서 “이란 정부도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정책 역시 폭력적이다”라고 비판했다.

/홍승희인턴기자 shhs9501@sedaily.com

홍승희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