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레몬법




미국 위스콘신주에 사는 마르코 마르케스라는 남성은 2005년 4월 밀워키 매장에서 메르세데스 벤츠 E320 신형 모델을 5만6,000달러를 주고 매입했다. 하지만 구입 첫날부터 말썽을 부렸다. 시동이 걸리지 않았던 것. 서비스센터에 수차례 찾아갔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원인조차 찾아내지 못했다. 마르케스는 환불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새 차로의 교환만을 고집했다. 결국 소송이 붙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 측이 물어줘야 했던 배상액은 차 값의 10배에 가까운 48만2,000달러. 차 값의 두 배에 이자, 소송을 포함한 기타 비용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마르케스가 거액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일명 ‘레몬법(공식 명칭은 ‘매그너슨 모스 보증법’)’ 덕분이다. 달콤한 오렌지(정상 제품)인 줄 알고 샀는데 매우 신 레몬(불량품)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75년 미국에서 연방법으로 처음 제정되고 주 단위로는 1982년 코네티컷주에서 최초로 시행돼 지금은 모든 주로 확산한 이 법은 차량 등에 결함이 있을 때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교환·환불·보상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똑같은 고장이 네 번 반복되면 적용받지만 핸들이나 브레이크 등 안전과 직결된 결함은 두 번만 이상이 생겨도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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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이 무서운 것은 판매 초기 제조사에 문제의 원인 규명 책임이 부여되고 결함이 확인되면 최대 매입가의 두 배를 돌려줘야 한다는 데 있다. 심지어 고객이 품질보증서를 받았다면 중고차가 적용 대상에 포함되기도 한다. 일부 주에서는 레몬법 적용 사례를 근거로 평판 조사까지 진행한다. 1991년에는 한국산 자동차가 플로리다주의 레몬법 시행 보고서에서 ‘최악의 불량 차량’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업계에서 레몬법을 ‘저승사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은 레몬법 시행을 6개월 앞두고 31일 세부 내용을 확정했다. 신차 구매 후 중대한 고장이 두 번, 일반 고장이 세 번 발생해 수리했는데도 같은 현상이 반복된다면 중재를 거쳐 교환·환불이 가능하다는 것이 골자다. 환불은 계약 당시 지급한 총 판매가격에서 주행거리만큼의 사용 이익은 공제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내년이면 미국만큼 강력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레몬법 적용 국가가 되는 것이다. 법이 바뀌었으니 달리던 차에서 불길이 치솟고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시동이 꺼지는 낭패가 이제는 좀 사라지려나.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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