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설비투자가 4개월 연속 감소하며 18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을 나타내고 제조업 투자심리는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찍는 등 곳곳에서 경기 하강 신호가 나타나는데도 정부는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9%로 낮추면서도 “3% 성장경로를 회복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최저임금 급등이 고용 한파의 원인이라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년 최저임금을 다시 10.9%나 올렸다. 이를 바라보는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와 경제전문가들의 평가는 싸늘하고 냉정했다. 진보 성향 전문가들도 다수 포함된 이번 설문에서 응답자의 90%는 우리 경기를 침체 또는 후퇴기라고 진단했고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부적절하다는 응답도 80%에 달했다.
1일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58주년을 맞아 서경 펠로와 경제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는 우리 경제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그대로 드러났다. 정부의 긍정적인 경기 평가와 낙관적인 성장 전망과 달리 전문가들은 현실을 훨씬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이대로는 안 된다’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도 최저임금을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올린 정부에 질책을 쏟아냈다. 2년간 누적 29%에 달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에 대해 ‘매우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38%에 달했고 부적절하다는 응답도 42%로 10명 중 8명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보통 수준이라는 평가는 12%, 적절하다는 8%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혹평을 내놓은 이유는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파급 효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저임금 인상폭이 부적절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44.6%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경영부담’을 꼽았으며 ‘취약계층 고용축소(37.8%)’와 ‘물가상승(13.5%)’이 뒤를 이었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핵심으로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정작 정책 수혜 대상은 경영부담을 느끼거나 일자리에서 쫓겨난 셈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대책과 일자리 정책 등 모두 방향 설정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최저임금 의존을 낮추고 복지증세나 갑질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전문가는 고용쇼크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서 원인을 찾았다. 최근 5개월간 취업자 증가폭이 10만명대 안팎에 그친 원인에 대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을 꼽은 응답이 30.8%로 가장 많았고 ‘경직적인 노동시장(23.9%)’과 ‘산업구조 변화(14.5%)’ ‘생산인구 감소(11.1%)’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는 고용부진의 이유를 날씨에서 찾기도 했지만 기후가 원인이라는 응답은 한 명도 없었다. 김준동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최저임금 속도를 보다 완만히 하고 업종과 지역에 따라 차등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장관도 “소득주도 성장과는 확실히 결별하되 최저임금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만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경기 국면에 대한 판단에서 응답자의 60%가 ‘후퇴기’, 30%는 ‘침체기’라고 답했다. 회복기나 호황기라고 답한 비율은 각각 2%에 불과했다. 정부가 매달 경제동향을 통해 ‘회복 흐름’이라고 밝힌 것과 정반대다.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와 성장 잠재력 제고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경기 불안감은 성장률 전망에 그대로 반영됐다. 응답자의 절반에 달하는 46%가 2.8% 성장을 예상했고 2.7%가 22%로 뒤를 이었다. 정부의 예측과 같은 2.9%는 20%에 그쳤다. 응답자의 76%가 2.8% 이하 성장을 내다보며 우리의 상황을 부정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갈수록 어두워지는 경기전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정책 변화를 주문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복지와 분배 등 사회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규제와 노동, 교육개혁이 이보다 앞서거나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며 “정책 간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성과는 나지 않고 정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노동시장 개혁과 사회안전망의 정비,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교육개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공정한 경쟁구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경제 집중력 해소와 기술탈취 방지 등 경제구조를 바꾸는 정책 없이는 소득주도 성장도, 혁신성장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