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시각] 미셸 오바마가 막춤을 추는 까닭

이현호 국제부 차장

이현호 차장



금융정보 미디어 기업 블룸버그를 키워낸 마이클 블룸버그. 그는 12년간 뉴욕시장으로 재직하며 뉴욕을 비즈니스가 넘쳐나고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잘사는 도시, 건강한 도시로 만든 성공한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블룸버그 전 시장에게도 유일하게 실패한 정책이 하나 있다. 스스로를 건강전도사라 부르며 ‘뉴요커들의 건강은 뉴욕이 지킨다’는 취지로 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한 건강증진 프로젝트다.

그는 트랜스지방과 칼로리가 높은 탄산음료의 과도한 섭취가 뉴욕 시민 3명 중 1명을 심각한 비만으로 내몰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제시하며 트랜드지방이 들어간 식품과 500㎖ 이상의 탄산음료 판매금지 조치를 내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뉴욕 시민들과 여러 단체들은 블룸버그의 일방적 생각에서 나온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소송을 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의 ‘판매금지’ 조치에 뉴욕 시민들의 60%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법원은 시민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이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대용량 탄산음료가 대중의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근 정부가 비만 관리 종합대책을 제시하며 ‘먹방’ 가이드라인 운운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비만이 느는 걸 막기 위해 한밤중에 폭식을 부추기는 방송·광고를 제한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오자 지나친 규제라는 논란이 들끓었다. 시청자와 네티즌의 예상치 못한 반발에 보건복지부는 “진의는 그게 아니다”라며 서둘러 발을 빼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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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먹방이 정말 국민 건강을 해치는지가 아니라 정부의 태도다. 먹방과 비만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밝혀진 것은 없다. 통계도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국민의 비만 원인 중 가장 큰 이유가 먹방이라며 이를 규제하겠다고 나섰다. ‘먹는 자유’까지 국가가 간섭하려 든다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정부가 국민들의 비만 관리에 앞장서는 것은 세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독일은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 청소년의 운동을 독려한다. 이미 1950년대부터 독일 학교는 학생들이 운동 수준에 따라 금·은·동 3등급의 스포츠 배지를 획득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호주와 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 등 많은 국가들은 비만의 원인으로 알려진 설탕에 추가 세금을 부과하는 ‘설탕세’를 적용한다. 서유럽 최고 비만 국가로 알려진 영국에서는 패스트푸드점과 슈퍼마켓 등을 대상으로 판매제품의 칼로리를 제한한다. 그러나 먹방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는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많은 선진국들은 규제보다 국민 설득에 힘을 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비만 방지 캠페인 ‘렛츠 무브’는 대표적 사례다. 5년 이상 계속된 이 캠페인을 홍보하기 위해 직접 TV 토크쇼에도 출연한 그는 국민들 앞에서 막춤을 추며 스스로 망가지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의 먹방 규제가 신발 신은 채 발바닥 긁는 일은 아닌지 모르겠다.
hhlee@sedaily.com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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