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낮 기온이 39도에 육박하며 전국이 폭염으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일부 어린이집에서 5세 이하 원아들을 대상으로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아 학대 논란이 일고 있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그대로 적용받는 가정형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숨겨진 ‘냉방 학대’ 사례가 더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학부모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전기세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어린이집 원장이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지시했다며 대응 방안을 묻는 게시글이 최근 일주일 새 잇따라 게시됐다. 서울 성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한다고 밝힌 교사는 “어린이집 원장이 원외에서 CCTV로 원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면서 교사가 에어컨을 틀 때마다 전화로 ‘에어컨 끄세요’라고 지시한다”고 폭로했다.
경기 의정부시 어린이집에서 근무한다는 교사는 “부모들이 아이를 데리러 오기 시작하는 오후3시 이후에만 보여주기식으로 냉방을 가동한다”면서 “벌써 목에 땀띠가 보이는 원아들도 있어 걱정”이라고 전했다. 한 학부모는 “원장님이 이 더위에 선풍기로만 아이들을 케어하시는 것 같다”면서 “아이 건강이 걱정되지만 건의했을 때 혹시라도 아이에게 불이익이 올까 걱정이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날 인천시에서는 한 가정형 어린이집이 폭염 속에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았다는 신고가 들어와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이처럼 어린이집 냉방이 문제가 된 데는 전기요금 누진제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국공립 어린이집은 교육용 전기요금을 내지만 인천 어린이집 사건처럼 아파트나 일반 주택을 꾸며 운영하는 가정형 어린이집의 경우 주택용 전기요금을 내고 누진제도 적용받는다. 지난 2016년 기준 전국 4만여개의 어린이집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가정형 어린이집이다. 서울에서 가정형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구 차원에서 여름·겨울철에 몇만원의 냉난방지원금이 나오지만 누진제로 고지서에 얼마가 찍힐지 예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사회복지시설로 신고하면 요금의 30%가 감면되기 때문에 이를 핑계 삼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의사표현이 서툰 영유아에게 냉방을 제공하지 않아 건강이 상하면 아동학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유아보육법상 어린이집 원장은 아동학대 방지 교육을 이수하고 아동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관리자용 폭염 대응 건강관리 업무 가이드북’을 통해 “기온이 최고에 달하는 낮12시~오후5시에는 에어컨을 가동해 실내온도를 26~28도로 유지해달라”고 교육하고 있다.
특히 영유아들의 경우 체온 조절 기능이 성인처럼 발달하지 않아 폭염에 취약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서희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어린이는 열사병에 취약해 심할 경우 구토와 경련 등 증상을 보이다 사망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면서 “수분을 충분히 공급해주고 실내 냉방온도를 26~27도 사이로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