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청와대가 북한에는 비핵화 속도를 내고 미국에는 북한의 요구에 성의 있는 입장을 보여달라며 ‘공개 중재’에 나섰다. 현 상황을 타개할 남북 3차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 있다”며 한 걸음 더 전향적인 자세를 나타냈다.
6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북미 관계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북한에는 비핵화의 속도를 내달라는 것이고 미국에는 북한이 요구하는 상응 조처에 대해 성의 있는 입장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북한은 미군 유해 송환, 서해 발사장 해체 등 비핵화에 의미 있는 조치를 취했으므로 미국이 종전 선언에 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미국은 북한 내 핵시설에 대한 신고조치를 받아봐야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날 김 대변인은 3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일단 (판문점 선언에서) 가을에 하기로 했고 2차 회담 때 훨씬 격의 없는 방식으로, 필요하면 언제든지 만날 수도 있다고 두 정상이 확인했기 때문에 항상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청와대는 8월 말 조기 남북 정상회담 개최 등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이날 발언은 좀 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막을 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남북·북미 외교장관이 마주치기는 했지만 양자회담은 열지 못하면서 문제를 정상급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남북 개성 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해 김 대변인은 “개소 날짜 등은 북한과 협의 중이나 결정되지 않았다”며 “조직을 어떻게 만들지는 북한과 논의하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북미 간 장외 기싸움은 계속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이날 “새로운 역사의 첫걸음을 내디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과는 달리 국무부를 비롯한 미 행정부가 제재 압박 전략에 매달리며 과거로 뒷걸음질치고 있다”며 “구태에서 벗어날 줄 모르며 기성의 강도적 논리에 집착돼 있는 미 국무부를 비롯한 관료집단은 선임 행정부들이 실패한 교훈에 대해 깊이 고심해봐야 한다”고 압박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하는 등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데 그 밑에 실무 관료들이 북미 관계 개선을 막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5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할 경우 어떤 미래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며 “김 국무위원장에게 마스터클래스(최상급 수업)를 하며 누군가를 위해 문을 여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4월27일 판문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1년 안에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들이 전략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하기로 하면 1년 안에 할 수 있다. 우리는 전략적인 결정이 내려졌다는 증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북한의 추가적인 비핵화 행동을 압박한 셈이다.
한편 ARF는 의장성명에서 북한에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약과 추가적인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ARF 의장성명 단골 메뉴인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의 외교 총력전,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완전한 비핵화’ 용어 사용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