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제조업 脫한국 빨라지나] 美 관세트집에 결국 백기…"살려고 떠난다"

국내에서 대응법은 CIT 제소뿐

현지생산 전략 성공 불분명해도

"추가 공세 피하자" 이전 줄이어

“대응한다고 하는데 번번이 트집을 잡으니 이전을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내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국내에 있다가는 어떻게든 고율의 관세를 매기려는 미국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미 상무부는 자료 제출이 미비했다며 지난 3월 현대중공업그룹(현대일렉트릭)이 수출하는 대형 변압기에 60.81% 보복관세를 물린 바 있다. 그는 “변압기에 들어가는 수많은 품목 중 어떤 정보를 요구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며 “급하게 일단 답변을 써내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며 다시 제출하라는 요구도 없이 고율의 관세를 매긴다”고 토로했다.

0815A14 대미 변압기 수출 추이



미국의 트집 잡기에 시달리다 국내 생산을 포기한 업체는 이뿐만 아니다. 대미 수출 ‘유정용 강관(OCTG)’ 1위 업체인 넥스틸은 미국 공장 건설과 일부 라인 이전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미 상무부가 4월 “넥스틸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고 조사 절차를 지연시켰다”면서 75.8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면서다. 업계에서는 넥스틸의 대미 수출은 사실상 끝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넥스틸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넥스틸에 따르면 상무부가 문제 삼은 것은 ‘미 세관 관세담보’라는 문구다. 넥스틸이 번역을 맡긴 전문업체가 이 문구를 영문으로 옮기면서 ‘미 세관(US Customs)’을 생략한 채 ‘관세담보(tariff mortgage)’로만 표현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번역회사에서 ‘의도적으로 뺀 것이 아니라 같은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한 것’이라는 확인서까지 제출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상무부는 이 번역 오류 때문에 넥스틸이 제출한 나머지 자료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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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전을 고민하는 업체들은 한국에 남아서 대응할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이 없다고 호소한다. 그나마 믿을 만한 게 미국 내 행정법원 격인 국제무역법원(CIT)에 제소해 재산정을 유도하는 정도다. 하지만 상무부는 매년 보복관세를 다시 매기기 때문에 이듬해 판정을 통해 다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한두 해 있다가 그칠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고민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언제까지 이렇게 나올지 몰라 국내에서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현대일렉트릭 입장에서는 매출의 15%를 차지하는 미국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특히 중동 등 해외 주력 시장의 투자 위축 등의 악재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물량 대부분을 미국으로 수출해왔던 넥스틸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들 업체가 미국으로 생산 거점을 옮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현지 생산 전략이 성공할지도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당장 자재 조달 계획부터 원점에서 고민해야 한다. 철강업계에 따르면 유정용 강관의 경우 미국 내에서 경쟁업체들이 원자재(열연)를 내주지 않으려고 해 한국에서 물량을 들여와야 한다. 하지만 이미 한국산 원자재에 고율의 관세(57%)가 붙은 터라 이를 사용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변압기 업체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현대중공업그룹 고위관계자는 “변압기 안에는 일일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부속 자재가 들어간다”며 “현지에서 조달업체를 찾을 수 없으면 결국 한국에서 들여와야 하는데 이 경우 물류비가 발목을 잡는다”고 설명했다.
/김우보·고병기기자 ubo@sedaily.com

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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