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결정하면 꾸준히 추진하는 중국의 특징을 볼 때 ‘과학기술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도 앞으로 5~10년 뒤에는 위력을 발휘할 것입니다. 중국과학자협회와 중국과학원 등 여러 통로로 우리도 중국과 과학기술 협력을 강화해야 합니다.”(김종선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KOSTEC) 센터장)
중국 베이징에서 근무하는 김종선 센터장은 지난 8일 국제전화를 통해 “중국이 상당한 투자펀드를 만들어 일대일로에 투자하며 표준을 만들고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제안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서 중국은 ‘과학기술 굴기’를 바탕으로 에너지·환경·정보기술(IT) 등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기술표준을 선점해 장비·기술·서비스 진출을 꾀하고 있다. 일대일로는 ‘시안~중앙아시아~유럽’의 육상과 ‘푸젠성~동남아~아프리카~유럽’의 해상에서 21세기판 실크로드를 구축해 투자와 경제교류를 가속화하려는 전략이다. 안전 확보를 명분으로 아프리카 동부 지부티 해군기지 건설 등 인민해방군의 해외거점도 마련하고 있다. 중국군은 자주국방·패권확대는 물론 해양·우주항공 개발, 해외자원과 에너지 확보 등을 뒷받침하려 한다.
중국은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 증가 속도, 연구원 수와 논문 수, 대학과 연구기관 성과, 특허 출원 건수에서 세계 1위로 발돋움했다. 서행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중국은 ‘R&D 슈퍼파워’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등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활발한 창업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경제성장을 꾀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중국의 ‘13차 5개년 국가과학기술 혁신계획(2016~2020)’을 보면 과학기술 혁신과 투자, 글로벌 인재 유치, 기초·원천기술 확보로 제조·에너지·안전·국방 등 11개 분야 68개 과제를 집중 육성해 오는 2020년까지 혁신형 국가로 도약한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지난 2001년 중국에 건너가 무선랜카드, 모바일게임, 통번역SW사업을 했던 고영화 한국혁신센터(KIC) 중국센터장은 국제통화에서 “중국은 과학기술 혁명으로 제2의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기업이 나타나고 있다”며 “AI·블록체인·헬스케어·빅데이터 기반 기술기업이 많이 생기는데 제조업 경쟁력에서 2025년 일본, 2035년 독일, 2045년 미국을 따라잡겠다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김종선 KOSTEC 센터장은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주도형 발전전략을 표방한 시진핑 2기(지난해 10월)는 다양한 내부 기초기술을 사업화로 연결 지으며 외국 기업 인수합병(M&A)으로 기술을 흡수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고 있다”며 “기초연구에서 기술이전, 기업 상용화까지 굉장히 강조하고 있고, 창업해 유니콘이 되겠다는 기류도 강하다”고 전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인 중국은 다양한 시범사업을 벌여 경쟁에서 이긴 1·2등에게 자금과 시장을 몰아줘 세계적으로 키우고 과학기술 R&D 투자를 늘리고 드론 등 신산업을 시장에 맡겨 성장시키며 제도나 규제를 만들어가는 전략을 펴고 있다.
AI·5G·드론 등 韓 훌쩍 앞서가
과기 일대일로 10년내 위력 발휘
신남방정책과 연계 접점 찾아야
이 과정에서 중국은 자국의 주요 거점 발전과 해외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오는 2030년까지 일대일로 과학기술 협력 네트워크를 완성할 방침이다. 바이춘리 중국과학원 원장은 지난해 5월 베이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기술지원과 서비스를 통해 이들 국가의 실제 문제 해결을 도울 것”이라며 “기후변화, 물 안정성 확보, 녹색에너지, 질병예방·재난 구호 등에 집중하고 있는데 모래바람 방지 기술 등 다른 나라 기술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22개국이 중국과학원의 국제 과학협력 네트워크에 참여해 자문·인재훈련·과기협력·기술상업화에 주력하고 있고 중국과학원은 9개의 해외 과학기술 거점을 통해 기상측정 등 20여개의 주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고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KOSTEC에 따르면 중국과학원은 일대일로에 철도·전력·도로망과 거점 항구, 자유무역지대 건설 등을 추진할 때 과학기술로 뒷받침하는 ‘일대일로 과기지탱행동계획’에 나서고 있다. 한랭·고온·다습한 기후와 황사에 견디는 고속 기관차, 습지·동토·사막에서 버티는 석유·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신소재와 첨단공법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선박과 비행기 제조·관제시스템이나 정보화 기술도 마찬가지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 북서쪽을 비롯 몽골,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염두에 둔 절수·생태농업 기술, 녹색에너지와 저탄소 도시 기술, 홍수·가뭄·지진·전염병 등 자연재해 경보시스템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에너지 확보를 위해 지능형 채탄기나 로봇, 가스채굴장비를 개발하고 위성과 심해 기술상품화에 나서며 중의학과 서양 의학을 융합해 기술·제품·서비스 수출도 추진하고 있다.
다만 중국의 일대일로가 미국의 견제 속에 아프리카를 비롯한 스리랑카(항만), 말레이시아(철도), 네팔(수력발전소), 파키스탄(철도) 등에서 부채증가와 주권침해 우려로 난항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게 발생하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인제대 총장과 효성기술원장을 역임한 성창모 고려대 초빙교수는 “아프리카 일부 지식층으로부터 ‘중국을 몹시 싫어한다(hate)’는 말까지 들었지만 중국은 길게 내다보고 정책을 꾸준히 추진한다”면서 “칭화대만 해도 ‘2040~2050년 미국 스탠퍼드와 MIT를 앞서겠다’며 싱가포르 난양이공대를 배우자고 한다”고 전했다. 6~7년 전만 해도 한국의 신성장동력 보고서를 참고해 응용하던 중국이 이제는 AI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비교우위를 바탕으로 5G(5세대) 통신장비, 핀테크, 전기차, 배터리, 드론, 로봇, 태양광 등에서 훌쩍 앞서가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성 교수는 “톈진대 공대 등에서 특강할 때 ‘實事求是(실사구시)’를 붙여놓고 연구·교육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런 중국이 1인당 국민소득이 5만달러가 넘는 싱가포르의 과기 혁신비결을 배우고 있다”며 “우리도 R&D에 많은 돈을 들여 논문을 쓰고 특허 내는 것을 뛰어넘어 일자리를 만들고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중국 과학기술 전문가인 홍성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과학기술부가 중국제조 2025 등에 필요한 기초·원천 분야의 대규모 R&D를 매년 100여건 수행(국가중점기초연구발전기획)하는데 글로벌 트렌드를 꿰뚫어 목표를 제시하고 톱클래스로 자리매김하는 게 치밀하다”며 “기초·원천 분야에서 소규모 개인 과제로 버티는 한국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팍스시니카(Pax Sinica·중국의 세계지배)의 기반을 공산당 100주년인 2020년까지 닦으려고 하는데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중심으로 일대일로가 핵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신북방~일대일로~신남방’을 연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대로 한반도 신경제지도·신남방·신북방과 일대일로의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