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정부가 중국식 인터넷 규제 모델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인도 정부는 인터넷 시장 개방으로 미국 정보기술(IT) 공룡기업들에 주도권을 내줬다며 인도판 텐센트·알리바바를 키우려면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시장 포화에 따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 시장에 집중해온 미국 IT 기업들은 중국식 규제 모델이 세계 2위 인터넷 시장인 인도에까지 퍼지자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도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인터넷 규제안을 입수해 인도 정치권이 미국 IT 기업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규제안에는 △인도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강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자상거래, 검색엔진, 클라우드 컴퓨팅에서 발생한 데이터를 국경 내에 저장 △해외 자본이 인도 유통기업 지분을 편법으로 인수하지 못하도록 규제 △인도 IT 기업 지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인도 정부는 이 같은 규제정책을 도입하는 배경에 대해 “시장 지배적이고 비경쟁적인 글로벌 기업들에 정당한 사업환경을 제공해 국내 기업의 혁신을 장려하고 디지털 경제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 정치권에서는 인터넷 시장을 지나치게 개방한 나머지 국내 기업들을 육성할 토양 자체를 빼앗겼다는 비판이 팽배하고 있다. 미국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인도의 인터넷 사용자는 3억9,000만명으로 중국 다음으로 많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는 올해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은 330억달러(약 37조3,000억원)로 지난 2015년과 비교해 3배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은 미국 월마트의 자회사인 플립카트와 아마존이 사실상 양분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왓츠앱 등 미국계 SNS 기업들의 진출로 인도 IT 기업들은 중소기업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WSJ는 “인도 정치인들은 어떻게 중국의 인터넷 규제 정책이 알리바바·텐센트 등 거대 IT 기업을 만들었는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인도 기업에도 ‘숨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식 인터넷 규제 모델이 동남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되는 데 이어 인도에까지 상륙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IT 기업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베트남에서는 6월 사이버보안법이 입법절차를 마침에 따라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해외 IT 기업들은 내년 1월1일부터 현지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해 정보가 국외로 반출되지 않도록 하고 베트남 사무소도 설치해야 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나날이 인터넷 검열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태국도 중국식 인터넷 규제 모델 수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거대 인터넷 시장인 인도까지 중국처럼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되면 적잖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인도에서 미국계 IT 기업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비네이 케사리 변호사는 “예상치 못했던 정책”이라며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만 인도가 인터넷 규제를 실제로 시행하기 위해서는 난관이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의 전기세가 비교적 비싼 탓에 인도 IT 기업들도 데이터센터를 주변국에 설치하고 있어 해외 IT 기업들에 데이터 반출을 금지할 경우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정부의 데이터 감시를 프라이버시 침해로 보고 완강히 거부해온 미국 IT 기업들이 인도 정부의 요구에 순순히 따를지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