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대법원에 일제 강제징용 소송 판결을 지연시켜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1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박 대통령이 ‘징용소송 대책을 마련해보라’고 지시했고 법원행정처장과 한 회동 결과도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김 전 실장이 2013년 12월1일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을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낸 소송의 결론을 최대한 미루거나, 전원합의체에 넘겨 판결을 뒤집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했다. 이러한 요구가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김 전 실장이 밝힌 것이다.
또 검찰은 앞서 외교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문건을 통해 이날 회동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도 배석한 사실도 확인했다. 당시 청와대가 행정부처와 사법부의 대표들을 불러놓고 ‘재판 거래’를 제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은 당시 회동에 앞서 2013년 10월 이병기 당시 주일대사가 청와대와 외교부에 이 소송을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돌려야 한다고 의견을 전달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차 전 처장도 회동 뒤 대통령의 의중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전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과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검찰은 차 전 처장을 불러 청와대 지시가 재판부에 전달된 경위를 확인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