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검찰이 언급한 대법 판례 살펴보니…안희정 사건 '거울' 될까

■위력추행·간음죄 대법원 판례 분석

피고인-피해자 업무관계 중시하고

범행 후 피해자 행동 문제삼지 않아

피고인 진술 진실성도 판단 대상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성폭력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선고받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검찰이 지난 20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내려진 법원의 무죄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대법원은 이번 사건보다 훨씬 더 위력 행사로 보기 어려운 경우에도 위력을 인정해 유죄로 판결해왔다”며 “법원에서 위력을 너무 좁게 해석해 기존 대법 판례와도 취지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제시한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간음 사건 대법원 판례 5건을 살펴봤다.

◇피고인-피해자 업무관계 중시했다=검찰이 제시한 판례를 살펴보면 재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 사이의 업무상 관계를 중점적으로 판단했다. 각 사건에서 피고인과 피해자는 연예기획사 대표-소속 가수, 피트니스 사업장 대표이사-종업원, 장애인지원센터 센터장-상담직원, 방송사 부장-부서 직원 등 직접적인 업무상 지시관계에 있었다.


인천지법이 담당한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근무한 부서의 부장이던 피고인이 피해자의 업무 감독자로서 인사성과를 관리하는 등 임면권을 가진 점, “정직원 채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인이 직위를 이용하여 위력으로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는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졌다. 피고인은 범행 시 “내가 근무평가를 잘 줬다”는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이지만 재판부는 “피해자가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부하직원으로서 피고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운 지위와 상황에 있어 자유의사가 제압됐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법 사건에서는 피해자를 소속 가수로 데리고 있던 소속사 사장이 “너랑 사귀어 보고 싶다”, “방송출연 전에 끼를 테스트해봐야 한다”고 말하며 위력을 이용해 피해자를 추행한 사실이 인정됐다. 폭력이나 협박 등 강간 사건에서 나타나는 직접적인 위력이 과시되지 않았으나 피고인의 지위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이나 간음죄의 근거가 됐다.

◇범행 이후 행동으로 피해자 진술 배척 않았다=
안 전 지사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비서인 김지은씨가 범행 이후에도 업무를 수행하는 등 간음 이후의 행동에 비춰볼 때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시했지만 기존 판례에 따르면 범행 이후 피해자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부산지법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건 이후에도 업무를 지속한 사실에 대해 “피해자는 사건 이후에도 지속되는 신체 접촉 시도와 과로 등으로 괴로워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면서도 “사건이 공개되는 경우 분쟁이 발생하고, 아버지가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걱정 등으로 압박감에 시달렸다”고 언급하면서 문제 삼지 않았다. 또 재판부는 피해자가 상당기간 피해사실을 감췄고, 범행 후에 함께 식사를 하는 등 피고인의 요구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피해사실을 부인하는 사실확인서를 작성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소극적인 성격과 상황이 주는 부담감, 수치심 등을 고려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아직도 많은 수의 피해자가 ‘자신만 참고 넘어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성폭력 피해의 노출을 꺼리면서 적극적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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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지법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카카오톡 메시지 등으로 추행에 대해 항의하지 않은 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한 1심 판결이 2심에서 파기돼 최종심까지 유지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주변에 피해 호소를 한 사실과 피해자의 설명 등을 종합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특수성 고려했다=피해자의 진술이 일부 모순되더라도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상태를 고려해 전체적으로 신빙성을 판단한 판결도 있다. 부산지법 재판부는 “피해자의 범행 과정에 대한 진술이 단편적으로만 보면 서로 어긋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면서도 전후 진술을 전체적으로 관찰해 신빙성을 쉽게 배척하지 않았다.

인천지법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은 일부 사소한 사항에 관해 다소 일관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나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고, 추행을 당한 경위, 범행의 과정 및 모습, 피해자의 감정 등에 대한 묘사도 자세해 이를 허위로 지어낸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또 “피해자의 진술은 타인 사이가 아니라 직장 상사인 피고인이 갑자기 범죄자로 돌변한 상황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며 “설령 피해자의 행동이 일반적인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모습과 다르다고 보더라도 쉽사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피고인 진술 진실성도 따졌다=검찰이 제시한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뿐 아니라 피고인 진술의 진실성과 일관성도 따져물었다. 인천지법 사건에서는 피고인이 사건 이후 “○○아 죽을 죄를 졌다, 미안하다”는 피고인의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주장과 달리 의사에 반하여 피해자를 추행했다고 판시했다. 피고인과 피해자 간의 나이 차이와 사건 이전에 개인적으로 만난 적 없는 점 등도 피해자가 묵시적으로라도 추행행위에 동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의 근거가 됐다. 또 피고인의 추행행위에 대한 진술의 일관성도 납득하기 어렵다며 신빙성을 문제삼았다.

서울중앙지법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찰에서 한 진술과 검찰 출석 시의 진술을 대조해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피고인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의정부지법 사건에서도 범행 당시 직접 운전했다고 했다가 대리기사를 불렀다고 진술을 번복한 피고인에 대해 “대리기사와 진술을 비교해보면 피해자가 아닌 피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고 판시했다.

이 같은 판결을 종합할 때 피해자와 검찰 측 증인에 대한 신빙성을 주로 판단한 안 전 지사에 대한 1심 판결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안 전 지사에 대한 판결문에는 모두 14차례에 걸쳐 ‘신빙성’이 언급됐는데 피고인 부인인 민주원씨의 진술과 관련된 내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김씨나 검찰 측 증인에 대한 언급이었다. 판결문에는 “피해자의 증언·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표현도 수차례 등장했다. 검찰과 여성계는 이 같은 법원의 판단에 대해 “위력의 범위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면서 2심에서 안 전 지사에 대한 공소사실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이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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