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정여울의 언어정담] 찰칵찰칵, 머물고 싶은 순간을 담아내는 소리

작가

낯선 외국인이 같이 셀카 요구

강의시간에 필기 대신 사진 소음

때로는 공격적으로 비칠 수도

배려심 갖춘 셀카문화 아쉬워

정여울 작가






얼마 전에 인도에 방문했다가 색다른 체험을 했다. 너도나도 앞 다투어 외국인에게 ‘같이 셀피를 찍자’고 제안하는 인도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인도여행에 동행한 모든 한국인들에게 인도인들은 ‘나랑 사진을 찍자’며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사진을 찍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내성적인 나는 얼떨결에 선글라스를 얼른 쓰고 인도사람들의 제안에 응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해졌다. 현지인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요새 인도에서는 외국인과 셀피를 함께 찍는 것이 유행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도 나를 갑자기 불러 세워 ‘너와 같이 셀피를 찍고 싶다’고 영어로 당당하게 말하는 인도 사람들의 당찬 모습이 놀라웠다. 그런데 셀피만 달랑 찍은 후 다른 대화는 전혀 시도하지 않고 훌쩍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아, 나는 그들의 셀피 수집에 잠시 이용당한 것이구나!’하는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들은 셀피에만 관심이 있고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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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찰칵, 하루에도 수백 번씩 울려 퍼지는 셀카 찍는 소리들은 이제 우리 일상의 전형적인 풍경이 되었다. 사진은 스쳐지나가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소유하려는 욕망을 반영한다. 이미지는 쉴 새 없이 우리 곁을 빠른 속도로 스쳐가지만, 풍경이나 인물의 순간적 이미지를 포착하고 고정시켜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구는 찰나의 순간까지도 ‘캡처’해내는 놀라운 기술과 ‘매일매일 셀카 찍기’라는 경이로운 진풍경을 낳았다. 셀피는 현대인의 나르시시즘을 강화하기도 하지만, 자칫 스쳐지나가기 쉬운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소중히 간직하고 의미 부여하는 마음의 습관을 낳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 찍기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타인에게 사진 찍히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는 마치 거대한 총이나 대포처럼 폭력적인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나는 강의를 할 때 독자들이 사진 찍는 소리에 놀라 강의 내용을 깜빡 잊기도 한다. 칠판이나 화면에 비친 내용을 필기하지 않고 쉽게 사진으로 찍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아 강의 내내 셔터소리가 울려 퍼지곤 할 때마다 난감해진다. 노트필기는 전혀 강의에 방해가 되지 않지만 사진 찍는 셔터소리는 강연자에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된다. 강의 내용을 ‘찍는 것’보다는 강의를 진심으로 귀기울여 ‘듣는 것’이 더 소중한 일이 아닐까.

모두가 포토그래퍼가 되어 하루에도 수십 장 이상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사진 찍기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대인의 일상이자 문화가 되었다. 찰칵찰칵, 때로는 상쾌하고 싱그럽게 들리지만 때로는 우리를 공격하는 소음처럼 들리는 이 의성어와 우리는 어떻게 화해해야 할까. 내가 찍는 카메라의 ‘찰칵찰칵’ 소리는 상큼하게 들릴 수 있지만, 타인의 휴대폰이나 카메라에서 울리는 ‘찰칵찰칵’ 소리는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다. 인간은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다가오는 모든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 조금 더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사진을 찍기 전에 미리 ‘실례합니다, 잠시 촬영을 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본다면 상대방이 느끼는 불쾌감은 오히려 호감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내 감정이 다치지 않을까 신경써준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조금 더 고려해줄 수만 있다면, ‘찰칵찰칵’ 소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는 영롱한 울림소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누르는 셔터 소리가 타인의 마음에 지나치게 커다란 자극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조금 더 주변을 세심히 살펴보고 둘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찰칵찰칵’ 소리를 내고 싶을 때마다 ‘사각사각’ 종이 위에 연필이나 펜으로 글을 쓰는 시간을 조금 더 늘려보곤 한다. 예컨대 비슷한 사진을 습관적으로 열 장 이상 찍는 대신에 아주 곰곰이 생각해서 한 장만 사진을 찍고 그 장면에 대한 ‘글쓰기’를 해보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 속의 ‘사진’에 집중하느라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사건’이나 ‘장면’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부디 우리의 ‘찰칵찰칵’ 소리가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공격적인 알람이 아니라, 삶의 가장 소중한 풍경을 내밀하게 담아내는 조화로운 멜로디가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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