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美 정계 '보수의 별' 매케인 투병 끝 별세] 상원 호령한 '베트남 전쟁영웅'...뇌종양 수술받고도 의회복귀 '투혼'

포로생활 딛고 정치인 변신 성공

오바마케어 폐지 반대표 행사 등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각 세우며

정치셈법 아닌 자신의 가치 추구

"눈부신 귀감" 美전역 애도 물결

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뇌종양 수술 후인 지난해 7월25일(현지시간) 건강보험법 개정 논의안을 지지하는 투표를 위해 워싱턴DC 미국 국회의사당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 눈썹 위에는 혈전 제거 수술 흔적이 선명히 나 있다. 그는 투병 중에도 주요 입법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상원 의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블룸버그통신존 매케인 상원 의원이 뇌종양 수술 후인 지난해 7월25일(현지시간) 건강보험법 개정 논의안을 지지하는 투표를 위해 워싱턴DC 미국 국회의사당에 출석하고 있다. 왼쪽 눈썹 위에는 혈전 제거 수술 흔적이 선명히 나 있다. 그는 투병 중에도 주요 입법 과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상원 의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했다. /블룸버그통신



미국 정계에서 ‘보수의 별’로 워싱턴DC를 호령하던 존 매케인(82) 공화당 상원 의원이 25일 오후(현지시간) 별세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5년간의 혹독한 포로 생활을 하다가 생환하며 ‘영웅’으로 불린 매케인 상원 의원. 두 차례의 대권 도전에 실패했지만 미국의 가치와 국익을 위해서는 수술실에서도 걸어 나와 초당파적 면모로 의회 정치를 이끌어 미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하늘로 떠난 매케인에 대해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최고의 애국자’이자 ‘워싱턴의 눈부신 귀감이었다’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 등 추모의 물결이 미 전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매케인 상원 의원실은 이날 오후 “매케인이 부인 등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앞서 가족들은 지난 24일 성명을 내고 “그는 생존에 대한 기대치를 뛰어넘었지만 병의 진행과 노쇠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며 의학적 연명 치료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미 언론들은 이에 “매케인이 이제 ‘마지막 날’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36년 8월 미국령 파나마운하를 지키는 코코솔로 해군기지에서 출생한 매케인은 뼛속까지 군인이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해군 제독을 지냈고 그 역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폭격 임무를 맡고 출격했다가 전투기가 격추당해 심각한 부상을 입고 5년 이상 혹독한 포로생활을 했다. 특히 해군 사령관으로 있던 아버지가 ‘아들을 풀어주겠다’는 월맹군의 제안을 거절하고 아들이 잡혀 있던 하노이 폭격을 명령한 것은 유명하다.


천신만고 끝에 풀려나 ‘베트남 전쟁영웅’으로 주목받으면서 매케인은 1982년 하원 의원에 당선됐고 1987년 애리조나주 상원 의원(임기 6년)에 선출돼 내리 6선을 지냈다. 상원 군사위원장을 지내면서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인 그는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에 보복 조치를 취한 데 대해 “위선적 행태”라고 비판하며 “한국을 그만 괴롭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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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케인(앞줄 오른쪽) 상원 의원이 해군 비행단 복무 중이던 지난 1965년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존 매케인(앞줄 오른쪽) 상원 의원이 해군 비행단 복무 중이던 지난 1965년 동료들과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위키피디아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이 강했던 매케인은 ‘매버릭(Maverick)’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으며 고집이 세고 이단아라는 이미지도 만만찮아 백악관 입성에는 실패했다.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한 그는 2000년 공화당 경선에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 2008년에는 공화당 후보로 지명돼 마침내 대선 본선에 올랐다. 매케인은 당시 무명이나 다름없던 40대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발탁해 ‘페일린 열풍’을 부르며 선전했지만 ‘버락 오바마’라는 첫 흑인 대통령 탄생에 분루를 삼켜야 했다.

매케인의 정치는 그러나 의회에서 계속 반짝였다. 지난해 7월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그는 왼쪽 눈썹 위에 혈전 제거 수술을 마친 후 수술 자국이 역력한 채로 의사당에 복귀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특히 같은 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폐지에 사활을 걸었던 ‘오바마케어’ 가 그의 마지막 한 표로 기사회생했다. 표결을 위해 상원 회의장 앞으로 걸어나가던 매케인이 치켜세웠던 엄지손가락을 반대로 떨어뜨린 순간은 미국 의회사에 초당적 행보의 대표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매케인은 오바마케어 폐지 등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며 정치적 이념 앞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도 대립각을 피하지 않았다. 그는 5월 말 회고록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 인물”이라고 일갈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정상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수치스러운 실적”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매케인의 장례식에 초청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매케인의 별세 소식에 미 전역에서는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매케인은 강한 신념의 소유자이자 최고의 애국자였다”고 칭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는 “그는 옳은 일이라면 틀을 깨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며 추모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매케인의 삶은 워싱턴에 눈부신 귀감이었다”고 회고했으며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그는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케인 가족에게 “가장 깊은 연민과 존경을 전한다”며 고인을 기렸다./뉴욕=손철 특파원 runiron@sedaily.com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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