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흔하지만 특별한 추억을 주무르다

<日신예작가 '오타니 워크숍' 국내 첫 개인전>

아이 얼굴상 도자 등 104점 선봬

서울 지역성 담고자 을지로 뒤져

낡은 나무 등 구해 작품 만들기도

갤러리 페로탕 서울서 9월 22일까지

팔판로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 전시중인 오타니워크숍의 ‘골든 차일드’팔판로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 전시중인 오타니워크숍의 ‘골든 차일드’



일명 청와대길로 불리는 종로구 팔판로 ‘갤러리 페로탕 서울’ 앞뜰에 고대의 청동 조각 같은 대형 두상이 자리를 잡았다. 어른이 양팔을 벌려야 다 껴안을 수 있는 크기로, 좌대에 올라 눈을 지긋이 내리 깐 정면상이라는 ‘형식’ 면에서는 황제상 같은 위엄을 풍긴다. 하지만 통통한 볼에 작은 코와 입, 짧은 눈썹과 곱슬곱슬한 머리칼은 이내 미소짓게 만드는 아이 얼굴이다. 일본의 주목받는 신예작가 오타니 워크숍의 작품 ‘골든 차일드’. 출산 장려정책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귀한 요즘 같은 시대에는 집집마다 아이가 곧 황제 못지않은 금동(金童)이니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다.

오타니 워크숍 ‘슬리핑 걸’ /사진제공=페로탕 서울오타니 워크숍 ‘슬리핑 걸’ /사진제공=페로탕 서울


파리 본점과 뉴욕·홍콩에 분점을 둔 페로탕 갤러리가 오타니 워크숍의 첫 국내 개인전을 다음 달 22일까지 개최한다. 문을 열고 들어선 전시장은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입구에는 고대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을 변용한 기둥 위에 두상을 올린 작품이 놓였다. 역시나 어린아이의 얼굴, 꼭 만화 주인공 같다. 작가가 선보인 104점의 대부분은 도자 작품이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미끄러지듯 누워있는 ‘잠자는 소녀’는 19세기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영감 받아 그린 ‘오필리아’를 떠올리게 하고, 작은 거미 작품은 프랑스의 여성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마망’을 연상시킨다. 주물럭거린 손의 흔적이 역력한 작은 새·인물상을 비롯해 설화 속에서 나온 듯한 토끼와 곰, 선사시대 얼굴 모양 조개 장신구 혹은 해골 같은 작품 등은 고대 유물을 보여주는 듯 신비감을 고조시킨다.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서 다음달 22일까지 열리는 오타니 워크숍 개인전 전경.갤러리 페로탕 서울에서 다음달 22일까지 열리는 오타니 워크숍 개인전 전경.


갤러리 페로탕 서울에서 다음달 22일까지 열리는 오타니 워크숍 개인전 전경.갤러리 페로탕 서울에서 다음달 22일까지 열리는 오타니 워크숍 개인전 전경.


작가의 본명은 오타니 시게루(38). 오키나와현립예술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그는 예술가로 살아갈 미래를 고민하다 1년간 화물트럭을 끌고 일본 전역을 유랑했다. 작가는 “오래된 집과 절, 건축물과 설치작품을 만나기도 한 자아성찰의 여행이었다”면서 “여행의 끝에서 ‘난 역시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트럭여행은 또한 ‘흙’의 가치, 즉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작가는 점토가 유명한 시라가키에 옛 타일 공장으로 쓰이던 큰 가마가 딸린 작업실을 구했다. 고베 대지진 등 반복된 지진들로 버려진 공장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진지한 작품들의 산실이 됐다.


그의 첫 개인전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 스타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이목을 끌었다. 이후 오타니는 카이카이기키갤러리 등 굵직한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으며 국제적 레지던시를 돌면서 작품세계를 확장시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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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EKWC레지던시에 있을 때는 그 나라의 흙을 사용했어요. 이번에 전시하게 된 서울도 이 지역성을 담고자 을지로 등지를 뒤져 좌대로 사용한 낡은 나무, 선반을 만든 침목 같은 것을 구했죠. 작품이 자리잡을 환경이 중요하거든요.”

작품에는 흙의 보편성과 지역의 특수성이 동시에 담기며, 오래된 듯한 질감과 고대 유물같은 형식으로 빚은 작가의 아들·딸 닮은 인물상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미감과 특별한 추억의 정겨움을 함축한다. 떨어져 나뒹구는 듯한 검푸른 남자의 얼굴에는 눈물 같은 반짝임이 흐른다. 작가는 “어쩌면 자소상”이라며 웃었다.

오타니 워크숍 ‘F-걸’ /사진제공=갤러리 페로탕 서울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오타니 워크숍 ‘F-걸’ /사진제공=갤러리 페로탕 서울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오타니 워크숍 ‘올드 맨’ /사진제공=갤러리 페로탕 서울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오타니 워크숍 ‘올드 맨’ /사진제공=갤러리 페로탕 서울 ⓒ 2018 Otani Workshop/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Courtesy Perrotin


혼자지만 ‘오타니 워크숍’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작가는 “도예 뿐 아니라 나무,청동도 다루고 설치작업도 하기 때문에 ‘오타니 공방’같은 느낌으로 여럿이 함께하는 다양성, 공방 활동의 전체를 뜻한다”면서 “공예로 분류되는 도예가 현대미술과 만나는 접점, 공예와 조각과 설치의 경계를 보여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사진제공=페로탕 서울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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