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SNS로 '입영거부' 선언한 사진가 김민...왜] “조직적 국가폭력 원치 않아...합리적 대체복무제 마련됐으면”

"국가 폭력에 대한 거부감으로 병역거부 결심"

30일 대법원 양심적 병역거부 공개변론 주목

지난 6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프리랜서 사진가 김민씨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오지현기자지난 6월 병역거부를 선언한 프리랜서 사진가 김민씨가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오지현기자



“지난 6월18일이 입대일이었지만 저는 군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오랜 결심을 실천하는 날입니다. 저는 병역을 거부하겠습니다.”

흔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하면 집총을 거부하는 특정 종교인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 6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입영 거부를 선언한 프리랜서 사진가 김민(25)씨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집회·시위 현장에서 목격한 공권력의 폭력성을 보고 입영을 거부하기로 했다”면서 “양심의 자유와 같은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더라도 병역을 거부하는 이들이 범죄인이 되지 않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대체복무방안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서울경제신문이 대체복무 규정이 없는 병역법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한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기 전인 6월27일과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을 하루 앞둔 29일 두 차례에 걸쳐 김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문답이다.


-지난 6월18일 SNS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어떤 취지에서 병역거부를 결정했나.

=나는 완벽한 평화주의자는 아니다. 집총을 거부하는 것은 맞지만 ‘살상을 연습한다거나 준비한다는 것을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유에서 입영을 거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세월호 집회, 해고노동자 집회 등 현장에서 목격한 공권력의 폭력성이 이런 신념을 만들었다. 기울어진 시스템 속에서 무너지고 희생당한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목격하며 곁에서 사진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폭력의 일부가 되지 않겠다’는 입영거부는 불합리에 굴하지 않겠다는 저항의 실천이었다.

-2012년과 2013년 제주도 강정마을 등지에서 집시법 위반 등으로 경찰에 연행된 전력이 있다. 폭력에 대한 경험이 결국 입영거부를 이끌었다는 말인가.

=병역거부 사유가 종교적인 이유보다 생경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니까 사람들에게 더 욕을 먹는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었던 이유는 저의 병역거부 사유가 한두 문장으로 표현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군대 자체보다는 공권력과 국가폭력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개인들을 많이 봐왔고, 스스로도 국가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군대를 가선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총과 살상에 대한 거부라기보다는 군 조직적 문화에 대한 반발과 저항으로서 입영거부를 택한 경우다.

-수감생활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은데.

=군대 또는 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군대에서 실질적으로 제 목숨에 대한 위협이 느껴졌다. 참다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고, ‘윤일병 사건’처럼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이런 생각 아래에서는 감옥행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쉽게 말하면 죽기 싫어서, 살고 싶어서 선택한 측면도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진가 김민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집회와 세월호 집회 등 집회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이다./김민씨 홈페이지 캡쳐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사진가 김민씨가 운영하는 홈페이지.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집회와 세월호 집회 등 집회시위 현장에서 찍은 사진들이다./김민씨 홈페이지 캡쳐


-한국 군대 조직의 문제가 결정에 영향을 준 것 같다.


=연예인은 군 특혜를 받고, 군내 각종 사고와 비리 사건은 끊임없이 뉴스를 장식하는 상황을 보면 힘없는 일반 병사들은 ‘소모품’처럼 죽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쓰레기 같은 군대는 거부하겠다”는 말을 누군가는 계속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에서 이런 이유의 병역거부가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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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에서 군대 개혁을 얘기하려면 으레 ‘군대 먼저 갔다오라’는 말이 돌아온다. 일종의 ‘정상성’에 대한 자격이 되어버렸는데.

=군필자들의 경우 군대에서 겪은 피해에 대한 고백은 많이 하는데, 실질적으로 군대 처우가 개선된다는 얘기가 나오면 오히려 반발한다. 개인들의 피해는 쌓여있는데 실질적 보상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이기 때문에 애국심을 통해 스스로의 피해를 합리화하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공격성 또한 ‘특혜를 받는다’는 생각에서 표출되는 것 같다.

-병역거부 선언 후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지인들에게만 조용히 말하고 (감옥을) 다녀올 수도 있겠으나 SNS로 공개 선언한 이유가 스스로 그 선택을 버텨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지인과 부모님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 지지가 없었더라면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 어떤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

=궁극적으로는 군축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많은 20대 남성들을 군대에 보내서 전쟁 사상을 주입할 시간에 공부를 더 시키면 얼마나 좋겠나. 현대전 개념에서 인력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자원낭비라고 생각한다. 병역거부자 수백 명이 수감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 신념은 범죄자를 양산한다고 해서 교화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은 판사·검사는 물론 교도소 간수까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체복무제를 개선해 사회경제적 낭비를 막으면 사회 구성원 전체의 혜택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씨는 인터뷰 말미에 “(국민의) 의무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대체복무제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의무를 방기한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앞서 헌재는 입영 소집에 불응하면 처벌하도록 한 병역법 제88조 1항에 대해 합헌으로 결정하면서도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같은 법 5조 1항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대체역’을 도입하는 한편 복무기간을 36개월로 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다. 하급심에서 이미 무죄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30일 열리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과 관련한 대법원 공개변론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다.


오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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