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을 진흥하기 위해 만들었으면 최소 10년은 제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나중에 지금까지 뭐했느냐고 해야지 자꾸 중간에 성과를 일일이 보고하라고 하니 ‘네이처’나 ‘사이언스’지에 논문을 내는 데 급급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긴 호흡으로 연구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김두철(사진)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작심한 듯 정부의 기초과학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독일 막스플랑크와 일본 이화학연구소 같은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소를 표방하며 지난 2011년 설립된 IBS는 설립 6년 만에 피인용 상위 1% 논문 비중이 5%에 육박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지만 당초 설립 취지 및 계획과는 달리 예산이 줄고 정부의 간섭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김 원장은 “설립 당시에는 ‘블록 그랜트’로 예산을 통째로 받아 IBS가 각 연구단에 알아서 적절히 배분하는 방식이었으나 올해부터 예산 심의방식이 바뀌면서 융통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면서 “정부가 자꾸 ‘마이크로 매니지’를 하려고 하는데 결국 IBS와 과학자들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IBS의 각 연구단은 연간 100억원가량의 연구비를 10년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내로라하는 국내외 석학들이 단장직에 응모했다. 29개 연구단 중 6개를 외국인 단장이 이끌고 있다. 연구단별 연간 예산이 평균 100억원이 넘었던 설립 초기와 달리 지금은 74억원까지 줄었다. 연구단이 늘어나는 데 비해 예산 증액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올해 2,540억원이던 IBS 전체 예산이 내년에 대폭 감액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연구단별 평균 예산이 72억원으로 더 줄어든다. 김 원장은 “매년 그랜트(연구자 제안 과제 연구비)를 신청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정년이 보장된 석학들이 미국 교수 자리를 박차고 IBS로 왔다”면서 “하지만 예산이 줄면서 더 이상 같이 신나게 연구해보자고 얘기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김 원장은 기초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뿐 아니라 평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비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연구성과를 중요 지표로 삼다 보니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연구에 지원이 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들이 정년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논문과 같은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다 보니 장기적인 과제보다는 당장 논문을 쓸 수 있는 연구에 매달리고 인용이 많이 될 수 있는 ‘팬시’한 분야로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성행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