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은 최근 해외 인수합병(M&A) 전문가 채용에 돌입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M&A를 통한 동력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삼성전자 등 국내 대기업들이 M&A만 검토하는 부서를 따로 두고 관련 분야의 인재를 세계 각지에서 삼고초려해 집중 육성하는 것처럼 앞으로 금융회사도 공격적 M&A에 나서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 금융사(史)에서는 위기의 순간마다 초대형 M&A가 등장했다. 이 중 1기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때로 볼 수 있다. 폐업 위기에 몰린 부실은행들이 대거 흡수·합병되면서 활로를 찾았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M&A가 진행됐던 셈이다. 이 과정에서 한일은행과 상업은행이 합병해 우리은행의 모태가 됐고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각각 동화은행과 대동은행을 품에 안았다. 하나은행도 당시 충청은행과 보람은행을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단순 외형확대 위한 M&A로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생존 한계
신한금융, ING생명 인수따라
KB·우리·하나 등도 반격 채비
동양생명·ABL생명 대어급에
롯데 금융사도 시장 나올 수도
당국 ‘자의적 해석’ 개입은 변수
2000년대 이후로는 금융회사들의 성장을 위한 M&A가 집중적으로 단행됐다. 신한은행은 2003년 조흥은행을 3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단숨에 국민은행에 이어 국내 2위 은행으로 도약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당시 신한이 한미은행과 조흥은행을 짝짓기 파트너로 고민하다 조흥은행의 시너지 효과가 더 클 것으로 판단해 최종 낙점했다”며 “지금의 신한을 만든 결정적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신한은행은 이어 2006년 6조6,765억원에 LG카드를 인수하면서 단숨에 카드업계 1위에 올라 ‘리딩뱅크’ 자리까지 차지하게 된다. 2010년대 들어서는 KB금융의 반격이 시작됐다. 2015년 LIG손해보험에 이어 2016년 현대증권까지 사들이면서 1위 종합금융지주 자리를 재탈환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존의 생존이나 외형확대 목적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M&A 문법이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과거에는 은행이 보험사나 카드사를 인수해 해당 업권에서 나오는 수익을 챙겨가기만 하면 됐지만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상황이 다르다”며 “보험이나 카드사가 가진 고객정보를 영업에 활용하지 못하면 그대로 경쟁에서 밀리는 은행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재무적 관점이 아닌 전략적 관점에서 M&A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금융권은 앞으로 몇 년 사이 금융회사들의 생존을 가를 대형 M&A ‘빅뱅’이 일어날 것으로 분석한다. 실제로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맥킨지는 올해 전 세계 금융 분야의 M&A 규모가 지난해 4,620억달러에서 33.3% 급증한 6,16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인데다 경쟁이 심화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새로운 핀테크 기술이 등장해 M&A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 베이커맥킨지의 진단이다.
이미 국내에서도 신한금융이 ING생명(오렌지라이프)을 2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인수가 최종 마무리되면 신한금융이 KB를 제치고 다시 한번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올 상반기 기준 은행과 카드에 90% 가까이 쏠려 있는 순이익 포트폴리오도 다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른 금융지주회사들도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시장에 판을 흔들 만한 대형매물들이 적지 않게 나와 있는 상태다. 중국 안방보험의 자회사인 동양생명과 ABL생명이 대표적이다. 동양생명은 국내 생보사 중 자산 7위에 해당해 업계 서열을 바꿀 만한 덩치를 갖고 있다.
롯데그룹의 지주사 전환으로 금융계열사인 롯데카드와 롯데캐피탈·롯데손해보험 등도 시장에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계열사를 거느리면 금융당국의 통합감독을 받게 되는 등 규제 강도가 커져 매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자본확충 숙제를 안고 있는 교보생명이 교보증권을 내놓을 것이라는 설도 끊임없이 거론된다. KB와 하나금융은 물론 출범을 앞둔 우리금융지주와 한국금융지주 등이 M&A 전장에 뛰어들면 시장은 급격히 달아오를 수 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M&A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DGB금융지주가 하이투자증권 인수에 애를 먹었던 것처럼 대주주 적정성 등을 두고 자의적 해석이 개입되면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주사 전환 이후 공격적 M&A를 준비 중인 우리은행도 위험가중가산을 과다 계상하는 ‘표준등급법’ 복병을 만나 실탄 확보가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