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스타트업 성지' 베를린]바이엘, 스타트업에 팀당 5만유로 선뜻…"뭘 해도 손가락질 안해"

"당장의 수익성 고려하지 않는다"

대기업들, 스타트업 적극 육성

"훌륭한 자원 경험" 혁신가도 만족

물가 실리콘밸리보다 훨씬 싸고

과감한 액셀러레이터 역할도 한몫

독일 화학·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Grant4Apps’에 참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고 있다. /Grant4Apps 홈페이지독일 화학·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운영하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Grant4Apps’에 참가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환하게 웃으며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고 있다. /Grant4Apps 홈페이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세계적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의 제약 부문 본사에 입주한 스페인 스타트업 ‘S-THERE’의 직원들이 소변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베를린=한재영기자지난달 3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세계적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의 제약 부문 본사에 입주한 스페인 스타트업 ‘S-THERE’의 직원들이 소변을 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하고 있다. /베를린=한재영기자


0715A02 ‘스타트업 허브’베를린의 위상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찾은 세계적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의 제약 부문 본사. 16.5㎡ 남짓한 사무실에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를 맞춰 입은 직원 3명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바이엘의 사무공간을 쓰고 있는 이들은 스페인에서 온 스타트업 ‘S-THERE’의 소속 직원들이다. 손바닥만 한 제품을 변기에 부착해 소변 분석을 통해 건강상태를 체크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가 S-THERE의 사업 아이템이다. 이 업체의 아드레안 고메스 리더는 “바이엘의 훌륭한 인적·물적 자원을 경험하고 싶어 베를린에 왔다”고 소개했다.

이들이 바이엘 본사에 자리를 펼 수 있는 것은 ‘Grant4Apps(G4A)’ 프로그램 덕이다. 바이엘은 지난 2013년부터 한 해 수 개의 팀을 선발해 100일간 팀당 5만유로(약 6,500만원)와 사무실을 제공하고 협력 가능성을 탐색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G4A를 운영해왔다. 올해 약 100개 국가, 1,800여명의 혁신가들이 G4A 참여 기회를 엿봤고 S-THERE를 비롯한 총 6개 팀이 바이엘의 눈에 들어왔다. 국적은 독일뿐 아니라 스페인·이스라엘·캐나다·영국·미국으로 모두 다르다.

G4A 글로벌 헤드인 수잔나 바르가는 “바이엘의 전통적인 화학·제약사업과 디지털헬스 분야에서 스타트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G4A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이 우리 사업과 얼마나 연관이 깊은지를 가장 중요하게 따진다. 당장의 수익성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베를린이 스타트업 허브로 주목받는 데는 바이엘 같은 대기업의 역할이 크다. 독일 최대 이동통신사 도이치텔레콤의 허브라움, 바이엘의 G4A 같은 세계적인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 베를린에서 진행된다. 바이엘은 심지어 독일 남서부 레버쿠젠에 글로벌 본사가 있지만 G4A는 베를린에서 운영한다. 베를린이 전 세계 혁신가들을 빨아들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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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품 연구를 촉진할 인공지능(AI) 기반 클라우드 플랫폼을 개발하는 사이클리카(Cyclica)도 이런 케이스다. 사이클리카는 캐나다 스타트업이다. 면역학 박사 학위 소지자인 린다 자오 사이클리카 연구원은 “토론토는 우리 사업에 적용되는 AI 연구개발(R&D)의 세계적인 중심지지만 스타트업 창업 기회가 많고 우리 역시 유럽 시장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베를린을 찾았다”고 말했다.

베를린이 스타트업 도시로 급부상하는 데는 대기업뿐 아니라 과감한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전문 육성업체)의 역할도 있다. ‘로켓인터넷’이 대표적이다. KOTRA에 따르면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상위 5건 중 3건이 로켓인터넷 스타트업에서 발생했다. 유럽 최대 온라인 패션유통사인 잘란도, 한국 배달업체 배달통 인수로 잘 알려진 딜리버리히어로 등이 모두 로켓인터넷이 인큐베이팅한 독일 스타트업이다. KOTRA의 한 관계자는 “이른바 ‘로켓인터넷’ 군단이 독일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유럽 도시들에 비해 물가가 싼 것도 ‘배고픈’ 혁신가들을 유혹하는 요인이다. 바르가 글로벌 헤드는 “베를린은 물가가 싸고 사무실로 빌릴 공간도 많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비스가 실리콘밸리는 55달러인 데 반해 베를린은 27달러, 숙소 임대비용(침실 1개 도심 주변 기준)도 3,467달러와 884달러로 4배 가까이 실리콘밸리가 비싸다. 옛 동베를린 지역의 허름한 자동차정비소 건물 3층에 사무실을 마련한 스타트업 그로버의 창업자 미하엘 카사우는 “오히려 개발이 덜 된 듯한 투박함이 스타트업 분위기에 잘 들어맞는다”면서 “베를린은 독일의 실리콘밸리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창업 지원도 발달돼 있다. 독일에서의 스타트업 창업 기간은 최장 10일이 걸리는 실리콘밸리보다 빠르다. 외국인 창업자의 비자 발급률도 77%에 이른다. 정부 지원 루트도 ‘Gruendungszuschuss’, ‘EXIST’, ‘ProFIT’ 등으로 다양하다. 독일 현지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유럽·독일·베를린 등 3개 레벨에서 체계적으로 스타트업을 지원한다”고 말했다. 베를린 현지에서 만난 스타트업의 한 관계자는 “베를린은 무모할 것만 같은 그 무엇을 시도해도 손가락질받지 않는다”며 “개성을 존중하고 자유분방한 베를린이 스타트업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베를린=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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