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카드를 꺼내 든 것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왔던 주택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다. 정부가 서울 지역에 택지를 개발하려고 하지만 서울 시내에는 그린벨트를 해제하지 않고는 물리적인 공간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수도권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서는 인접 지역에서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과천·의왕·하남·광명 등만 놓고 봐도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좋은 입지의 주택을 공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 정부는 재개발·재건축사업에 대한 규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도심 주택 공급물량의 80%가량을 재개발·재건축이 담당하고 있다. 정부가 도심의 저층 노후주택 개발은 꽁꽁 묶어두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별로 없는 것도 한 이유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집값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하면 도심 땅의 효율을 극대화하고 양질의 주거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수도권 신혼부부희망타운 공급 확대 방침에 이어 지난달 27일 수도권에 신규 공공택지를 당초 30곳에서 늘어난 44곳 이상 개발하겠다고 발표했다. 신규로 추가된 14곳의 택지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청약지역인데다 한 곳당 1만 가구도 훨씬 넘는 주택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돼 사실상 ‘미니 신도시’급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문제는 어느 지역이냐는 것이다. 서울이나 수도권 인근에 이만한 공급량을 감당할 만한 택지가 남아 있지 않을뿐더러 서울의 집값을 안정시킬 만큼 수요자들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적인 지역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공개된 14곳의 택지에 대해서도 벌써부터 집값 안정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집값 급등의 요지인 서울 지역이 포함되지 않았을뿐더러 교통이나 인프라가 부족한 곳도 많아 수요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 성남 금토, 성남 복정, 성남 서현, 김포 고촌2, 부천 괴안, 부천 원종 정도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요를 충족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시흥·화성·양주 등은 아직 서울 출퇴근을 하기에는 교통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그나마 성남 금토(3,400가구), 성남 복정(4,700가구) 등은 시장에서 관심을 받고 있지만 택지 규모가 5,000가구를 넘지 못해 집값을 안정화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렇다 보니 보전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를 포함해 수도권 내 모든 가용토지를 공공택지 지구 후보로 검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서울 지역 그린벨트는 정부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대상이다. 서울 지역 내 그린벨트를 풀면 서초구 등 집값 급등 원인 지역을 곧바로 건드릴 수 있어 효과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그린벨트 면적은 19개 자치구 총 149.62㎢에 이른다. 이 중 대부분은 임야(101.07㎢)다. 자치구별로는 서초구가 23.88㎢로 가장 넓고 강서구(18.92㎢), 노원구(15.90㎢), 은평구(15.21㎢), 강북구(11.67㎢) 등에 그린벨트가 집중돼 있다. 경기도 그린벨트 규모는 2016년 말 기준 1,172.1㎢에 달한다. 2015년(1,175㎢) 이후 3곳이 해제된 면적으로, 전국 그린벨트(3,853.8㎢)의 30%를 차지한다. 현재 30만㎡ 이하 그린벨트의 해제 권한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서울 그린벨트 면적 149.62㎢ 매력
서초 우면산 일대·강남 세곡 등 유력
정부 해제 권한 앞세워 市 압박 전망
현재 서울에서는 서초구 양재동 우면산 일대와 내곡지구 인근, 강남구 세곡동, 송파구 방이동, 강동구 둔촌동 등이 후보지로 꼽힌다. 서초구 내곡동은 잔여 그린벨트를 추가로 풀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송파구 방이동은 지하철 5ㆍ9호선 등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로 언급되고 있다. 강동구 둔촌동과 상일동 또한 후보지 중 하나다. 이 밖에 경기 고양 삼송지구 인접 지역, 강서구 김포공항 주변 지역 등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열쇠를 쥐고 있는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검토는 하지만 선뜻 나서지는 않고 있다. 그린벨트 해제에 앞서 먼저 도심 유휴지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가 공개하고 있는 유휴 시유지 현황을 보면 올해 6월 기준 160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양재동 화물터미널 부지(3,866㎡)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400㎡ 이하의 자투리땅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결국 정부가 그린벨트 해제 권한을 앞세워 서울시를 압박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그린벨트는 면적이 30만㎡ 이상일 경우 중앙정부에 해제 권한이 있고 그 이하는 서울시장에게 권한이다. 특히 강남구와 서초구 그린벨트는 각각 2,388만㎡와 690만㎡ 규모여서 정부가 해제권을 쥐고 있다. 다만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국토교통부가 직접 권한 행사를 할 수 있더라도 지자체와의 협의는 필수인 만큼 장기간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재개발·재건축 등 도심 주거지 개발을 묶어놓다 보니 현 정부가 더더욱 그린벨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