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품’에서 비롯됐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태동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빚잔치로 미국의 부동산 호황을 이끌었다. 그러나 끝없이 오를 것만 같던 부동산시장이 2006년 침체기로 돌아서자 열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담보로 잡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부실채권이 쌓이기 시작했고 거미줄처럼 엮인 금융상품 전반이 나락으로 빠졌다. 실체 없는 거품이 터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거품 논란은 한국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가계부채는 지난 10년 새 두 배로 폭증했고 부동산이 가파르게 오르며 전국 땅값은 국내총생산(GDP)의 3.6배까지 뛰어올랐다. 255조원에 달하는 넘치는 유동성이 곳곳을 누비며 빚을 권하고 자산가치는 부풀었다. 반면 주력산업의 부진과 고용쇼크 등으로 경기 하강 기색이 짙어지고 있다. 여기에 올해에만 네 차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을 따라 한국은행도 연중 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급증한 부채를 유지할 이자비용이 늘면서 파산하는 사람이 생기고 자산가치는 떨어지면서 소비와 경기까지 위축하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10년 새 가계부채 2배, 부동산도 22%↑=한국은행에 따르면 2·4분기 말 가계부채(가계신용)는 1,493조2,000억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 중이다. 10년 전인 2008년 말 723조5,000억원의 두 배를 웃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장기 저금리 구조로 빚을 내는 게 미덕처럼 여겨지면서 가계부채는 급격히 늘었다. 특히 대출을 일으켜 아파트 등 부동산에 투자하는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한국의 가계부채는 세계적으로도 높다. GDP 대비 한국의 가계부채는 2017년 기준 94.8%에 달해 미국(79%)과 일본(57%), 중국(44%)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70%도 크게 웃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KB국민은행의 전국 집값 지수를 보면 2008년 8월 85.4에서 8월 104로 21.7% 증가했다. 전국 땅값은 GDP의 네 배 규모에 육박하는 등 한국 곳곳은 넘치는 유동성이 만들어놓은 거품에 파묻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다.
◇커지는 한미 금리 격차, 인상 시 연쇄 위협=문제는 이런 상황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이미 두 번에 걸쳐 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두 번 더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한국 기준금리는 1.5%, 미국은 1.75~2.0%인데 미국이 2.5%까지 올린다는 뜻이다. 1bp(0.01%포인트)의 금리차에도 세계 유동성이 움직이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가 1%포인트까지 벌어진다면 한국에 들어온 글로벌 자금이 이탈해 대거 미국으로 옮겨갈 수 있다. 결국 한국의 금리 인상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얘기다. 한은은 지난달 금리를 동결하며 고용여건과 소비 부진, 미중 무역전쟁 등 불확실성을 감안했지만 7월에 이어 8월에도 0.25%포인트 인상 소수의견이 나오고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만큼 늦어도 오는 11월에는 한국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리 인상은 바로 시중금리를 끌어올린다. 이 경우 변동금리 대출이나 2금융권의 고금리 대출을 받은 가계는 당장 이자부담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등 1,500조원에 가까운 모든 가계부채에 대한 비용이 직간접적으로 늘어난다. 국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금융자산이 많은 이들이 대출도 많아 가계부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금리 인상과 경기둔화로 한번 부실이 발생하면 전 계층으로 연쇄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높다”며 “버블을 관리하는 데 실패하면 통제하기 어려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수 회복 답답한데…“이미 얇아진 지갑 아예 닫을라”=한국의 금리 인상이 바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처럼 부동산 침체와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가계부채와 부동산이 실핏줄처럼 국민 전체와 연결되다 보니 소비 위축과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은이 지난달 말 발표한 8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달보다 1.8포인트 떨어진 99.2를 기록했다. 지난해 3월 이후 17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자 기준점인 100 아래로 떨어진 것이다. 이 지수는 100을 하회하면 경기를 비관하는 소비자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 내수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데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고용쇼크, 양극화 심화 등 구조적인 문제로 당장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잠재성장률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하향세여서 더 기다린다고 좋아질 여지도 적다. 이런 가운데 금리 인상이 빚 부담을 늘리고 가처분소득을 줄이면 내수 침체는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연준의 금리 인상을 한은도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일자리를 잃어 고통받는 저소득층이 이자부담까지 떠안으며 소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