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최악 취업난... 天倫마저 저버리다

여성전화1366 상담집계 결과

"취업 안하냐"는 부모에 화풀이

욕설·폭행 3년간 1,000건 이상↑

"청년 분노·좌절감 위험수위

정부차원 심리상담 등 대책 필요"

1315A31 폭력



지난달 중순 지훈(34·가명)씨는 “취업 준비 좀 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부엌에서 흉기를 꺼내 들었다. 지훈씨는 “나를 쓰레기 취급하지 말라”며 어머니를 위협하고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의 다급한 경찰 신고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지훈씨는 경찰에 인계돼 조사를 받았고 어머니는 급히 긴급피난처로 피신해야 했다. 기욱(29·가명)씨도 지난 6월 상반기 취업에 실패한 후 부모와 다투다 아버지를 밀쳐 어깨에 부상을 입혔다. “용돈을 달라”는 요청을 부모가 거절하자 자존심이 상한 기욱씨는 심한 욕설을 하며 부모와 언쟁을 벌였다. 부모는 구직기간이 길어지면서 기욱씨의 정서적·신체적 폭력이 심해졌다며 기욱씨와의 생활공간을 분리해달라고 여성긴급전화 상담사에게 요청했다.

지난달 청년실업률이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젊은 층의 구직난이 심해지면서 취업 스트레스로 부모를 때리거나 욕설을 하는 자녀가 늘고 있다. 경제적 자립을 못해 부모와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녀 개인의 좌절감과 분노가 가정 안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12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여성긴급전화 1366에 신고된 상담 건수를 집계한 결과 자녀가 부모에게 정서적·신체적 폭력을 휘두른 경우는 2015년 5,238건에서 2017년 6,633건으로 1,000건 이상 늘었다. 전체 가정폭력상담 중 3년간 수치가 증가한 경우는 자녀의 부모 폭행과 부모의 자녀 폭행이 유일했다. 전통적으로 자녀가 부모에게 폭행·폭언을 하는 것은 과거 부모와의 불화나 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트라우마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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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근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녀들이 공간을 함께 쓰며 좌절감을 폭발시키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게 1366 상담사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변현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가정폭력방지본부장은 “나이 들어 부모와 함께 살거나 부모에게 용돈을 타 쓰는 자녀들이 부모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취업 실패로 인해 쌓인 좌절감과 분노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분출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송혜련 1366충남센터 소장은 “부모는 폭행을 당할 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면 신고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실제 발생 현황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사회적 분노가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판단하고 탈출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실업으로 본인도 마음이 힘든데 가족들마저 이를 사회구조가 아닌 개인 탓으로 간주하면 잠재된 분노가 폭력으로 표출될 수 있다”며 “부모세대와 청년세대가 최대한 자주 대화하며 기대 수준을 맞춰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녀가 독립공간을 가질 유일한 방법이 직장인데 그게 좌절되면 낭패감이 클 것”이라며 “구직난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만큼 직업훈련과 심리상담 등 정부 차원의 좀 더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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