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학회와 관련해 스위스 추크주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추크주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떠 스스로 전 세계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산업의 본고장으로 자처하며 ‘크립토밸리’라는 이름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주 정부 관계자 및 협회·학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들이 얼마나 새로운 기술 분야에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어 부러운 심정이었다. 일례로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루체른대 공대에서 암호화폐 분야를 전공한 교수와 미팅할 때의 일이다. 당시 같이 방문한 우리 측 교수 중 한 분이 스위스의 경우 암호화폐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 방법인 암호화폐 공개(ICO)에 대해 정부 측에서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하느냐고 질문했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응당 한번 물어볼 만한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매우 뜻밖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한 교수를 쳐다보면서 ‘왜 정부가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느냐’라고 반문하는 루체른대 공대 교수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가 투자자들더러 위험한 암호화폐 투자를 권한 적도 없으니 높은 수익을 바라고 투자한 것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투자자 개인이 져야 할 뿐 정부가 그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태도였다.
우리나라로 시각을 한번 돌려보자.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 투자자들이 벌떼처럼 모여든다. 그런데 잘해서 대박이 나면 당연한 것이고 만일 쪽박을 차면 그때부터 정부가 왜 이러한 투자를 규제하지 않고 놓아뒀느냐는 성토가 시작된다. 이러한 개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언론이 가세해 ‘정부 두들겨 패기’가 본격화하고 그때쯤이면 정부는 관련 부처를 통해 대처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하게 된다. 그 대처 방안은 너무도 당연하게 관련 투자 자체를 강력하게 규제해 거의 말썽의 소지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우리나라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금융산업 경쟁력이 뒤처진다고 평가받는 근본 원인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그릇된 의식 수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한번 따져보자. 무언가 일이 잘못되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습관적으로 정부로 탓을 돌리며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을 요구한다. 투자란 속성상 위험을 떠안는 행위이다. 따라서 투자의 세계에서는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돈을 잃는 사람도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중 돈을 잃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여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결말은 해당 투자 기회 자체를 봉쇄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게 된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반복되면 우리나라 금융 세계에서는 정부가 보호하는 고만고만한 밋밋한 금융상품 외에 남아날 것이 없게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세계에서 금리가 가장 빨리 추락하고 있는 고령화 국가인 한국에서는 고수익에 대한 열망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강하므로 새로운 대박 금융상품이 나왔다는 소문이 나면 훨씬 더 심한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쏠림 현상이 규제기관의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악순환으로 연결됨은 물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금융산업의 비중이 최저치로 추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금융산업을 부활시키려면 정부가 보호해야 할 금융 분야, 예컨대 ‘예금’ 등과 그렇지 않고 투자자 본인들이 책임져야 할 분야, 예컨대 ‘투자’의 영역에 대한 인식 재정립이 가장 시급해 보인다.
이런 예가 어찌 금융뿐이겠는가. 교육의 경우도 한번 따져보자. 교육은 불가피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과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의 부모들이 목소리를 높여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면 그 결과는 전국 고교 평준화로 나타나게 되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조금이라도 나은 서울 강남으로의 심한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 아니겠는가. 요는 우리가 정부에 요구하는 것들은 이처럼 왕왕 기대와 반대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결코 만능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