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5세대(5G) 통신장비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던 중국 화웨이가 첫발부터 고배를 마시게 됐다. 5G 시대 개막을 앞두고 국내 산업생태계의 육성을 중시하고 있는 한국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신 삼성전자 등에 기회가 돌아가 급성장할 5G 통신인프라 산업 분야에서 국내 기업들이 화웨이 등의 기술과 경험을 추격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화웨이가 이번에 쓴잔을 들게 된 프로젝트는 SK텔레콤의 5G 장비공급 우선협상대상자 입찰이었다. SK텔레콤은 해당 입찰 결과 삼성전자와 에릭손·노키아 3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 3개사가 관련 기술을 선도하고 생태계 활성화에 필요한 역량을 갖춰 결정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4세대(4G) LTE와 호환성 등을 우선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5G를 상용화한다고 해도 초기에는 4G LTE를 함께 사용해야 하는데 SK텔레콤에 4G 장비를 공급한 업체들이 삼성전자·에릭손·노키아다.
화웨이는 전국망 대역인 3.5㎓에서 경쟁사보다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경쟁사보다 1·4분기 이상 빠르게 관련 장비를 개발해 성능의 안정성을 검증해왔고 가격도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이번에 SK텔레콤의 입찰장벽을 넘지 못한 데는 단순한 품질경쟁력 이외의 잣대에서 아직 국내 업계의 눈높이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화웨이는 민간기업임에도 중국 정부와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눈총을 받아왔다. 따라서 ‘보안성’이 생명인 국가기간망의 핵심장비 공급자로 적합한지에 대해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는 여론이 국내외에 있는 것이다. 미국과 호주도 최근 5G 장비공급업체에서 화웨이를 배제한 바 있다. 통신산업계의 상생발전에 대한 비전도 화웨이가 향후 한국의 통신장비 시장 진입을 위해 강화해야 할 덕목으로 꼽힌다.
SK텔레콤이 5G 네트워크 장비업체 삼성전자·에릭손·노키아를 선택함에 따라 KT와 LG유플러스 등 남은 이통사 두 곳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양사는 이달 중으로 5G 장비업체를 선정할 방침이다. 이 중 LG유플러스는 기존 LTE 장비와 연동을 이유로 화웨이의 장비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KT는 화웨이 장비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런 전망은 5G 장비업체 선정이 기존 장비와의 연동 효율성에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5G는 도입 초기 LTE 망을 함께 쓰는 비단독모드(NSA·Non-standalone) 방식으로 서비스된다. 이통사 입장에서는 신속한 망 구축과 관리 안정성 측면에서 LTE 장비를 공급했던 제조사의 제품을 택하는 게 유리하다.
LTE 구축 당시 SK텔레콤과 KT는 권역별로 삼성전자(수도권), 에릭손(경상), 노키아(전라) 장비를 도입했고 LG유플러스는 여기에 화웨이(수도권)까지 총 4개사 제품을 선정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통 3사 중 LG유플러스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LG유플러스 역시 기존 장비와 연동을 이유로 화웨이를 유력 업체로 꼽아왔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장비업체 선정은 아직 검토 중이나 내부적으로 큰 기류 변화는 없다”며 “고 말했다.
반면 화웨이 LTE 장비를 쓰지 않은 KT는 비슷한 이유로 도입 가능성이 적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경쟁사인 SK텔레콤이 화웨이 장비를 채택하지 않은데다 ‘국민 기업’을 내세워온 만큼 중국산 장비로 5G 상용화를 한다는 비판 여론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KT 측은 “세계 최고 수준의 5G 네트워크 제공을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장비업체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