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두운 골목에 혼자서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 만일 이곳에서 누군가 오직 나만을 위한 칵테일 한 잔을 만들어 내민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것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바텐더들이 말이다.
지난 4월 글로벌 주류업체 디아지오가 주최한 세계 최대 바텐더 대회 ‘월드 클래스 2018’ 예선전에서는 이런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다. 국내 유수의 호텔과 바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바텐더들이 ‘편의점에서 1만 원 이내로 구할 수 있는 부재료만으로 수준급 칵테일을 선보이라’는 과제에 맞춰 기상천외한 레시피를 선보인 것. 홈술족·혼술족이 늘어나는 추세를 고려해, 그리고 기자 개인의 호기심을 조금 보태 서울경제신문은 월드 클래스 2018 국내 결선에 오른 바텐더 10인의 ‘편의점 칵테일’ 레시피를 10주에 걸쳐 소개한다. 아울러 칵테일에 관한 지식과 각종 팁도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오늘은 편의점에서 늘 마시던 맥주 한 캔이 아닌, 특별한 칵테일과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좋게 말하면 평정심, 나쁘게 말하자면 무덤덤함이다. 나이가 들면서 좋은 점은 웬만한 일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어지간히 새롭지 않고선 별다른 감흥도 없다는 부작용이 따라붙는다. 맛에 대한 태도 역시 비슷한 것 같다. 대부분이 아는 맛, 뭘 넣어도 거기서 거기다. 이래서 어른들이 청국장이나 홍어처럼 코가 뻥 뚫리는 음식에 그렇게도 열광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이 칵테일이야말로 감각에 무뎌진 어른들을 위한 자극제로 적합하지 않을까. 은은한 소나무향에 무려 마늘을 가니시로 장식한 칵테일 ‘케이에프 고든스(KF-Gordon′s·사진)’ 말이다.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이 칵테일을 만들어 낸 최원우 바텐더는 깨끗하고 청명한 가을 하늘을 생각하며 레시피를 고안했다. 그는 “편의점 칵테일 미션을 준비하던 때가 봄이었다. 자동차 매연과 미세먼지가 너무 심한 그때 일상 속에서 건강과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는 힐링 칵테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소나무와 마늘의 힐링조합=KF-고든스라는 이름은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마스크 등급인 ‘KF’와 진토닉 칵테일을 유행시킨 ‘고든스’ 진의 이름을 합쳐 유해환경으로부터 건강을 지켜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칵테일 재료도 편의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효능이 뛰어난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중금속 배출에 효과적인 작설 녹차, 미세먼지 정화에 좋은 소나무, 항산화 효과가 뛰어난 배, 해독기능을 가진 마늘, 레몬보다 3배 많은 비타민 C를 지닌 유자를 사용했다.
우선 녹차 티백을 따뜻한 물에 우린다. 셰이커나 뚜껑이 있는 물통에 고든스 진 40㎖, 솔의 눈 20㎖, 갈아만든 배 20㎖, 녹차30㎖, 유자차 2티스푼을 차례대로 넣는다. 얼음을 넣고 흔들어 준다. 얼음을 걸러 목이 긴 샴페인 글라스에 붓는다. 트로피카나 스파클링 사과로 채운다. 이 칵테일의 화룡점정은 바로 가니시로 토칭하거나 구운 마늘 슬라이스를 올려 장식하는 것. 구운 마늘을 칵테일과 함께 먹었을 때 더욱 건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칵테일? 진토닉의 시작점 고든스 진=최 바텐더가 사용한 고든스 진(Gordon’s Gin)은 엄선된 주니퍼 베리(노간주 나무 열매. 겉모습은 블루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와 다양한 허브를 사용해 독특한 향을 가지고 있다. 증류 전문가들이 수확한 주니퍼 베리 중에서도 최상위 10%를 엄선해 제조한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고든스 진은 전 세계 140개국에 판매되며 세계 판매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고든스 진이 클래식 칵테일의 대명사 진토닉의 시작점이라는 점이다.
성중용 디아지오 바아카데미 원장은 “진 칵테일로 대표적인 진토닉의 탄생 스토리에는 고든스 진을 만든 알렉산더 고든의 일화가 등장한다”며 “진을 깔끔하게 마시고 싶어 했던 고든은 영국 병사들의 말라리아 예방약으로 사용됐던 토닉워터를 진에 섞어 마셨는데, 이는 ‘상쾌한 칵테일’이라 불리며 고든스&토닉이라는 이름으로 팔려나갔다. 이렇게 탄생한 진토닉은 세계 최초의 칵테일로 기록돼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