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함과 강인함, 화사함과 지독함 같은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것들의 조합은 묘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예술에서도 소위 고급예술과 대중예술, 순수미술과 자본주의가 두루 혼재하니 말이다.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내 자리잡은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17일 막 올린 개관기념전은 패션디자이너 정구호 감독의 기획 아래 ‘무절제&절제’로 이름 붙었다.
파라다이스 아트스페이스의 입구 쪽 상설전시실을 채운 파라다이스의 소장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몸값 비싼 작가들의 최근작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 출신 제프 쿤스의 대형 조각인 ‘게이징 볼-파르네스 헤라클레스(Gazing Ball-Farnese Hercules)’와 영국 태생 데미안 허스트의 금빛 설치작품 ‘아우러스 사이아나이드(Aurous Cyanide)’가 이날 처음 공개됐다. 드넓은 전시장을 제압하는 쿤스의 작품은 쉽게 부스러지는 석고 소재로 가장 힘이 센 신화 속 영웅을 모순적으로 담아냈다. 헤라클레스의 어깨에 올려진 반짝이는 파란 공에는 관람객의 모습이 비춰 마치 작품의 일부가 된 듯한 경험을 하게 한다. 한쪽 벽 전체를 차지한 허스트의 작품은 작가를 대표하는 스팟 페인팅(Spot Painting) 시리즈이자, 가로 9m 세로 3m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색에 독성 화학물을 뜻하는 이름을 붙여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안쪽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국작가 이배와 김호득이 1,2층 전시장을 차지해 ‘한국의 흑색 미학’을 선보인다. ‘숯의 화가’ 이배는 한지 위에 거대한 숯 구조물을 올린 설치작품 ‘불에서부터’를 통해 숯의 거친 표면과 은은하게 빛을 흡수하는 한지의 조합을 보여준다. 강력한 필치의 김호득은 설치작품 ‘문득, 공간을 그리다’를 내놓았다. 바람의 결을 담은 한지와 잔잔한 파동을 보이는 먹물이 조용한 리듬을 만들고 하얀 전시실 벽면의 그림자까지 작품의 일부가 됐다.
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은 “파라다이스 아트 스페이스는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의 조화를 담은 새로운 아시아 현대 미술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며 “국내외 유수 아티스트의 대표작 소개와 관람객 참여를 유도하는 체험형 전시 기획을 통해 국적을 넘나드는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지난해 아시아 관광산업의 새로운 거점이자 예술과 여가를 접목한 신감각의 ‘아트테인먼트 리조트’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를 열면서 ‘미술관 같은 호텔’을 선보인 데 이어 이번에 현대미술 전용 공간을 새롭게 마련했다. 관광산업에 예술을 끌어들인 광폭행보를 펼친 전 회장과 부인 최윤정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은 최근 세계적 미술전문매체인 아트넷이 선정한 ‘세계 200대 컬렉터’에 들었다. 한국인으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등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