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미국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이례적으로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을 포함한 총 6개의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이 참석했다. 이들이 청문회에 불려 나온 이유는 하나였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정보기관 수장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화웨이가 중국을 위한 스파이 활동에 장비를 악용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화웨이의 미국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렸다. AT&T는 화웨이의 장비 도입 계획을 철회했다. 미국 내 최대의 이동통신사 버라이즌도 신제품 ‘메이트10프로’를 포함해 화웨이 휴대폰의 미국 판매 계획을 백지화했다. 정치권도 가세했다. 미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들은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통신장비를 구매하거나 임차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압박 카드로 쓰려는 제스처가 아니냐는 해석이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미국 외에 호주와 일본·인도까지, 최근에는 영국 정부도 화웨이의 장비 도입을 금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화웨이를 집중 조명한 기사에서 “화웨이가 해당 국가의 통신 네트워크에 영향력을 발휘하면 커다란 안보 위협이 될 수 있어 각국이 잇따라 장비 도입 금지를 선언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화웨이 창업주 겸 회장인 런정페이는 인민해방군 정보장교 출신으로 여전히 중국 당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 화웨이를 활용하는 것은 중국 당국에 정보를 넘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국내 통신 업계도 화웨이의 보안 문제로 시끄럽다. 내년 3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5세대(5G) 장비 업체 선정 과정에서 화웨이 장비를 채택할지 말지를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화웨이의 장비를 도입하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LG유플러스는 5년 전 롱텀에볼루션(LTE) 장비를 도입할 때도 보안 문제로 논란이 많았지만 경쟁 업체보다 30% 저렴하다는 이유로 구매를 강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국가안보 위협의 우려에도 눈앞의 수익을 먼저 고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 업계의 맏형 격인 KT도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의심을 낳고 있다. 여론이 잠잠해지면 LG유플러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그나마 SKT는 화웨이 배제 방침을 밝혔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화웨이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공식 입장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에 1차 책임이 있다. 그렇지만 국가안보를 담보로 이윤 추구를 우선시한다면 기업들도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화웨이의 스파이 활동이 입증된 바는 없다. 하지만 미 의회에서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이 얘기한 “(화웨이가)정보를 악의적으로 훔치거나 비밀리에 스파이 행위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