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제과·제빵의 고장 파리에 갈 기회가 생겼다. 기자가 이곳에 머무른 시간은 단 이틀. 파리만 해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베이커리가 많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유명 디저트 가게 한 곳만 들러보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숙소 근처에 초콜릿 음료와 몽블랑 케이크로 유명한 ‘안젤리나’ 1호점이 있어 방문했다.
안젤리나 1호점은 튈르리역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걸어서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정도로 가깝다. 매장 입구에 대기 줄이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매장에서 먹고 가는 줄, 또 다른 하나는 포장 대기 줄이다. 개업 당시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매장 입장줄에서 대기했다. 점심시간이 시작할 즈음인 오후 12시에 도착했는데도 앞에 5팀 정도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자가 제품을 먹고 나갈 때는 대기 줄이 더 길어져 족히 40명 정도는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디저트류가 진열된 쇼케이스 공간을 둘러봤다. 하얀 진열대 위로 형형색색의 디저트들이 구경하는 재미를 더했다. 안젤리나는 대표메뉴인 몽블랑 외에 다양한 케이크류와 마카롱으로도 유명하다. 초콜릿 음료도 테이크 아웃하기 좋게 병 형태로 판매 중이었고 각종 페이스트도 구입할 수 있었다.
30분 정도 기다려 마침내 티 룸으로 자리를 안내 받았다. 안젤리나 내부는 1900년대 초반 건축양식과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 중이다. 한쪽 전체 벽면은 한 폭의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고 맞은 편은 전면 유리로 벽을 메워 공간이 더욱 커 보이는 효과를 냈다. 가구도 예전 양식을 그대로 따라서인 지 크기가 크지 않았고 좌석 간 간격도 넓지 않았다.
이곳의 대표 메뉴인 몽블랑과 핫 초콜릿을 주문했다. 안젤리나의 몽블랑은 몽블랑 케이크의 원조라고 알려진 데다 하루에 600개가 팔릴 정도로 유명해 기대가 더욱 컸다. 몽블랑은 생크림 위를 밤 크림으로 덮은 형태의 케이크를 말한다. 가격은 몽블랑 7유로(한화 약 9,100원), 핫초콜릿 9유로(약1만1,700원) 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주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음료와 케이크가 나왔다. 핫초콜릿부터 맛봤다. 유럽의 일부 디저트류들이 한국보다 훨씬 달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핫 초콜릿의 단맛은 예상을 넘어섰다. 좋게 표현하면 초콜릿이 정말 진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실 단 맛을 넘어 쓴 맛이 났다.) 이어 몽블랑을 먹어봤는데 핫초콜릿의 강한 단맛 덕인지 몽블랑 단맛이 담백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위에 올려진 밤 크림이 너무 퍽퍽하지 않아 부드럽게 넘어갔다. 달지 않은 음료와 함께 먹는다면 더 맛있게 맛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메리카노에 곁들일 것을 추천한다.
몽블랑을 보니 안젤리나에서는 어떻게 몽블랑을 만들게 됐을 지 궁금해졌다. 몽블랑(Mont Blanc)은 불어로 ‘흰 산’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 밤색 케이크에 흰 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출신 앙투안 럼펠미어는 프랑스 남부로 이주한 후 작은 빵집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 시기 그는 이탈리아 제빵과 프랑스 여러지역의 제빵 기술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후 1900년대 초 럼펠미어 가족은 파리로 자리를 옮기고 1903년 현재의 자리에 지금의 ‘안젤리나’를 연다. 럼펠미어가 안젤리나 티룸에서 몽블랑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파리 베이커리 곳곳으로 이 메뉴가 퍼지기 시작했고 샤넬 코코 등이 즐겨 찾아와 맛볼 정도로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럼펠미어가 프랑스 남부에서 있을 당시 이탈리아 제빵 영향을 받아 프랑스식 몽블랑이 탄생했을 것이라는 게 현지에서 도는 이야기다. 실제 이탈리아 디저트 중에 생크림을 산 모양으로 덮은 ‘몬테 비앙코’ (Monte bianco)가 있는데 이 이름 또한 이탈리아어로 흰 산을 의미한다. (이탈리아에서는 몬테 비앙코가 몽블랑보다 300년 더 일찍 만들어진 디저트라고 주장한다고 ….) 안젤리나에서 이 몬테 비앙코의 생크림 모양을 더 잘 유지하기 위해 밤크림을 덮기 시작한 것이 몽블랑이 된 것이라고 본다. 럼펠미어의 몽블랑은 성공적이었다. 100년이 지나도록 가게가 운영할 수 있게 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간 디저트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파리=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