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에서 자동차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를 두 시간 남짓 달리면 나주 혁신도시의 관문인 빛가람 장성로 표지판이 보인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10여분 남짓 더 차를 몰아가다 보니 광활한 부지에 우뚝 솟아 있는 한국전력공사의 본사가 위용을 자랑했다. 한전을 중심으로 15개의 공공기관과 아파트 단지 사이에 형성된 상업지구의 건물이 혁신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려하고 커다란 외형과 달리 추석 연휴의 시작을 이틀 앞둔 나주 혁신도시를 가까이 들여다보니 적막함과 고요함이 가득했다. 1층을 제외한 상가 건물 유리창에는 ‘임대’ 표시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왕복 2차선 도로도 황량했다. 공공기관 중 ‘맏형’ 격인 한전이 내려와 다른 도시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나주혁신도시의 실상이었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으로 나주 혁신도시에 발을 붙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공공기관 종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다수의 공공기관 임직원들은 교육여건을 비롯해 백화점·종합병원·교통 등 기본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무늬만 혁신도시일 뿐 학교를 찾아 이사를 가기도하고 주말마다 쇼핑과 문화생활을 위해 인접 대도시를 찾아 헤맨다는 목소리였다.
교육 환경에 대한 개선 요구가 가장 많았다. 승진을 노리는 한 공공기관 소속의 A씨는 고민 끝에 수도권에 위치한 지역사무소에서 나주 본사 행을 결정했다. 부인과 각각 중학교·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 둘과 함께 나주에 터를 잡고 본사 생활에도 적응할 무렵 그의 고민은 곧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될 아들에게서 시작됐다. 자사고나 특목고를 보내고 싶지만 혁신도시 내에는 선택지가 일반고 한 개뿐이었다. 나주 혁신도시와 20㎞ 정도 떨어진 광주광역시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A씨는 “광주에는 서울권 대학 진학률이 높은 학군이 있어 광주로 이사를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른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도 “입주한 공기업들이 조금씩 출연해 자사고나 특목고를 건립하자는 의견까지 나왔지만 결국 안 됐다”며 “혁신도시 내에 자사고나 특목고 등 좋은 학군만 마련된다면 광주로 이사를 가거나 부인과 자녀는 서울에 내버려두고 혼자만 내려오는 직원들의 비율이 급격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주 혁신도시는 물론 진주 혁신도시 내에도 고등학교 숫자는 한 개뿐이다. 나주시청 관계자는 “서울과 비교하면 학원도 그렇고 학교 선생님들의 능력 등에 의구심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고등학교는 인구 비율에 맞춰 추가로 설립될 예정”이라며 “오는 2020년께에는 고등학교가 하나 더 들어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의 부족은 혁신도시를 주말마다 유령 도시로 만드는 배경이 됐다. 나주 혁신도시의 상권 곳곳을 돌아다녀 보니 밥집과 카페, 노래방 등 유흥주점뿐이었고 생활편의 시설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주 공공기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주말만 되면 백화점을 찾아 광주로 넘어가고 있다”며 “구도심에 재래시장 등이 있기는 하나 잘 가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백화점이 없다 보니 전업주부인 부인들의 생활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불만도 높아졌다. 그는 “제 아내는 서울에 있을 때 백화점 내에서 진행하는 값싼 문화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며 “혁신도시 내에는 그런 시설 자체가 없다 보니 아내가 무기력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밝혔다.
영화관조차 없는 진주 혁신도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진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영화관은 물론이고 도서관 등도 없다”며 “인근 지역 축제나 관광 명소를 찾지 않는 이상 집 근처에서 즐길 거리는 전무하다”고 털어놨다.
종합병원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거셌다. 나주에는 여성을 위한 피부과와 치과·소아과 등 소규모 병·의원은 곳곳에 있었지만 응급환자를 수용할 만한 대형 의료기관은 보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나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전남대 병원이 30분 내에 있어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갑자기 아프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며 “종합병원이 혁신도시 내에 들어서야 제가 출장을 갔을 때도 새벽에 아이가 아프면 아내 혼자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전주의 공공기관 관계자는 “종합병원을 가려면 구도심까지 가야 하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가느라 불편이 가중된다”고 지적했다.
대중교통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탓에 나주에 위치한 대다수 공공기관의 주차장에는 버스로 두세 정거장 거리임에도 출퇴근을 위해 끌고 온 차들로 빽빽했다. 진주와 전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퇴근길에 만난 진주의 공공기관 관계자는 “버스는 거의 다니지 않고 오가는 택시마저 드문 상황”이라며 “차가 없이는 편하게 돌아다닐 수 없다”고 말했다. 혁신도시 내에서뿐만 아니라 혁신도시로 들어오는 교통편이 부족하다는 불만도 흘러나왔다. 나주 공공기관 관계자는 “나주까지 KTX가 다니지만 역에서 혁신도시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턱없이 부족해 어느 때는 20분도 넘게 기다렸다”면서 “요새는 광주 KTX 역에 먼저 내려 만원을 주고 나주 혁신도시로 들어오고는 한다”고 하소연했다.
/나주=박형윤기자 전주·진주=정순구·빈난새 기자 mani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