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용산구 해방촌 소재 신흥시장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상생협약을 지키고 있다. 이곳 상가운영회장이 이웃 건물 소유주와 임차인을 설득해 지난 2016년 11월부터 이룬 합의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50만원 수준으로 인근 다른 점포와 비교하면 반값 수준이다. 카페·식당·소매점을 연 소상공인들은 월세 부담을 덜고 해방촌만의 상권을 키워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곳도 ‘돈의 유혹’에 풍전등화다. 올해 들어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등 해방촌 신흥시장이 주목받자 십수명의 새로운 건물주들이 등장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방촌에서 작업실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외부에서 들어온 건물주들이 더 많아지면서 강제성이 없는 상상협약은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갑자기 뜨는 상권은 몰려드는 사람이 꼭 반갑지만은 않다. 얼마 후에는 오르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키워놓은 상권에서 밀려날 수 있어서다. 서촌의 ‘궁중족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6년부터 임대료를 두고 갈등을 겪던 가게 사장은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건물주가 가게 보증금을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월세는 297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올리면서 갈등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2의 궁중족발 사건을 막기 위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은 여전히 남은 숙제다.
◇‘둥지 내몰림’을 막기 위한 지자체 조례 실험=최근 들어 각 지자체는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 효과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2015년 9월 서울 성동구를 시작으로 전국의 총 14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 성동구는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통해 이듬해 지속가능발전 구역을 설정했다. 서울숲길·방송대길·상원길 일대가 이색적인 카페로 변모하면서 급격한 임대료 상승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성동구는 상생협약에 리모델링 비용 지원, 건축물 용적률 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구 재정으로 운영하는 안심상가도 조성했다. 상호협력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주민들 스스로 입주업체를 선별하며 임대료 인상폭을 줄이기 위한 자율적 상생협약을 확장하는 조처를 취했다. 그 결과 지속가능발전구역 내 임대료 상승률이 2016년 하반기 18.6%에서 지난해 하반기 4.5%로 낮아지는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 조례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조례는 강제성도 부족하고 상생협약을 어겨도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보다 2배, 4년 전보다 4배 이상 임대료가 오른 종로구 익선동은 상생협약을 추진해도 가입하는 건물주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워낙 상권이 커지다 보니 임대차 보장기한이 5년이든 10년이든 첫 임대료 진입 장벽이 높다. 익선동의 S공인 관계자는 “임대차 규제와 별도로 위탁을 통해 상가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우회한다”고 말했다.
◇중앙정부·지자체가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젠트리피케이션의 부정적인 효과를 막고 도시재생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이 상호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도시재생과 바로 맞닿아 있다. 강제를 통한 부작용은 줄이고 상생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가임대차법과 도시재생법·국토계획법을 연계하면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다.
배웅규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상생협약을 유도하는 보편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사동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필방·지업사 등 특정업종에 대해 지방세·재산세를 일부 감면하는 등의 방법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면서 “의무화만 강제하다 보면 손해 본 부분을 메우기 위한 부작용 때문에 상생이 이뤄지지 않아 부드러운 조화를 유발하는 세심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젠트리피케이션을 ‘둥지 내몰림’으로만 직역하는 것은 오류”라며 “부작용은 막으면서, 환경 개선의 긍정적인 측면이 도시재생인 만큼 집 단위, 골목 단위의 소규모 정비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성용 서울시 공공건축가는 ‘주거 고급화’인 젠트리피케이션과 문화예술인에 의한 상권 변화인 ‘소호 이펙트(Soho Effect)’를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대·연남동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런던과 뉴욕의 소호 지구에서 이뤄진 상권발달 과정”이라며 “특색 있는 골목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상가를 직접 매입해 문화 콘텐츠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