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의 표면적인 탈락 이유는 현격한 입찰가 차이다. 보잉 컨소시엄은 원래 사업예산 18조원보다 8조원이나 낮게 입찰가를 제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방위산업의 특성상 가격 외에 다른 변수가 작용했다는 관측이 많다. 방위사업 수주를 위해서는 업계의 노력 못지않게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지난해 6월 미국 측에 구매 의사를 타진한 것을 빼고 정부의 수주 지원은 알려진 게 없다.
무엇보다 방산비리 수사가 악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방산적폐를 뿌리 뽑는다며 지난해 7월 KAI를 첫 타깃 삼아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다. APT 수주전을 코앞에 두고 적폐수사가 몰아쳤으니 수주전략이 제대로 작동할 리 있었겠는가. 공격의 빌미만 제공해 경쟁업체에서 KAI를 비리업체로 흠집 냈을 공산이 크다. 민관이 총력전을 벌여도 부족할 판에 기업의 발목을 잡았으니 어쩌면 결과는 뻔했다. ‘예견된 탈락’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잖아도 한국 방위산업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히면서 위기상황이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KAI 등 10대 방산업체의 지난해 방산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16% 감소했고 수출은 35%나 급감했다. 외형이 쪼그라드니 방산업체의 일자리도 줄고 있다. 지금처럼 비리를 막는다고 규제·감시만 해서는 방위산업의 경쟁력이 더 약화되고 생태계는 파괴될 게 자명하다. 방위산업을 수출과 고용에 기여할 수 있는 산업으로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적폐몰이를 접고 방산업체의 연구개발(R&D)을 강화하는 등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육성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