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이 7일 이뤄졌다. 이는 북미가 최근까지 정전선언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우선 청와대에 축하를 보낸다. 서로 신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북미 간 갈등이 고조됐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결단과 중개자 역할은 이번에도 그 빛을 발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예정보다 빠르게 추진된 방북이라는 점에서 북미 간 쟁점에 대해 상당 부분 합의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추진을 기정사실화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오는 11월 미국의 중간선거, 혹은 내년 초까지는 북미 간에 협상과 유화적인 분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북한 비핵화에 도달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개연성이 크고 어느 수준의 비핵화에 상호 합의할 수 있을 것인지도 아직 불분명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의하면 중국이나 러시아는 속도에 대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에는 공감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일방적으로 그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북한 비핵화의 성패 여부는 미국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하면서, 김 위원장이 바라는 경제개발을 위한 필요조건과 제대로 교환하느냐가 관건이다. 김 위원장은 조건이 맞으면 비핵화할 용의는 있으나 상대의 반응에 상응해 조심스레 추진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정글의 세계와 같은 국제정치의 상황을 이해하면 상대적으로 가장 취약한 북한이 지니는 조심성과 우려는 아마 당연할지도 모른다.
향후 북한 비핵화의 변수는 의외로 미국에서 올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러시아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을 막고 협상 국면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정치·외교적 승리를 선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9년이 되면 그 계산법이 보다 복잡해질 듯하다. 세 가지 길이 있다. 북핵 문제가 2020년 대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서면 북핵 문제 해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노력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바라는 바이다. 두 번째는 북한과 우호적인 협상 분위기는 유지하면서도 완전한 비핵화보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이 미국에 위협을 주는 역량을 제거하는 선에서 북미 간에 타협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선호하는 방안일 것이다. 세 번째는 미중 전략경쟁이 격화되면서 북핵 문제를 중국을 압박하고 기존 동맹을 견인하는 수단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획기적으로 추진하는 핵전력 강화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방책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남북한 모두에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을 초래한다.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를 우리 스스로가 구성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계속 저울질을 할 것이고, 미국 백악관의 강경파들은 세 번째 안을 선호할 것이고, 북한은 은근히 두 번째 안을 추진할 개연성이 크다. 2019년 이후 첫 번째 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중재자 역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자명하다. 끊임없이 저울질하면서 변덕스러울 수 있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에게 협상의 동력을 계속 제공하고 설득할 제안자, 추동자, 심지어 실무자의 역할까지도 수행하지 않으면 핵협상의 긍정적인 미래를 달성하기 어렵다.
동시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에 대한 대비로 플랜 B와 C를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 국제정치의 악마성이 본 면모를 드러내는 순간 이를 버텨낼 내구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국방개혁은 남북관계를 넘어 추진돼야 한다. 공공성을 강화하는 내부 개혁이 과감히 추진돼야 한다. 이 경우 국민들은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이 정부를 신뢰할 것이다. 동시에 미중 전략경쟁을 넘어 우리 외교안보 공간의 지평을 열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열 새로운 질서에 대한 구상을 준비해야 할 시기다. 그렇지 않다면 남북한 모두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중 전략경쟁이라는 거대한 폭풍의 소용돌이 속에 다 휩쓸려 갈 개연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