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캐버노 소동의 진정한 피해자

연방 대법관의 인준 공방으로

사법부에 대한 신뢰 곤두박질

대법원·美민주주의 최대 피해

[해외칼럼] 캐버노 소동의 진정한 피해자

파리드 자카리아파리드 자카리아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CNN ‘GPS’ 호스트


최근 연방 대법관 인준 공방의 가장 큰 피해자는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도 브렛 캐버노도 아니다. 최대의 피해자는 대법원과 미국의 민주주의였다.

사법부는 정파를 초월한 워싱턴의 마지막 보루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현재 사법부는 미국의 전체 시스템을 거의 모두 집어삼킨 기능장애를 앓고 있다.

15년 전 ‘비자유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에 관한 책을 쓰면서 나는 미국도 자유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대중주의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 주목했다.

지난 세월 이 같은 위협에서 미국을 구해낸 것은 10개의 연방 헌법 수정 조항을 일컫는 권리장전에서 사법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순수한 다수의 지배를 규제하는 촘촘한 견제와 균형이었다.

일반 대중은 맹목적으로 다수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부 코드에 따라 통제되는 이들 안정화 요소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인식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각종 서베이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부 기관으로 꼽히는 군, 중앙은행과 대법원이 근본적으로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에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들 세 기구 가운데 아마도 대법원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대법원이야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궁극적 중재자이자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민주적 대중이 비민주적 기구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다지 불가사의하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혼합정체(mixed regime)를 최상의 정치제도라고 믿었다. 여기에서 혼합정체란 민주주의의 측면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중의 눈치를 살피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자유의 보존 같은) 고상한 가치를 따르는 일부 기구들로부터 안정을 얻는 체제를 말한다.

역사와 법, 기술적 전문지식 등에 뿌리를 둔 이런 종류의 기구들은 단기적인 여론의 풍향으로부터 보호를 받았으며 기능적 민주주의의 축으로 작동했다.

지난 수년에 걸쳐 미국의 가장 존경받는 기구들은 너나없이 격렬한 도전에 부딪혔다.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전 등 두 차례의 장기전으로 군의 평판이 시험을 받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 투기 거품은 믿어 의심치 않던 중앙은행의 지혜에 숱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들 두 기구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정성을 보였고 의도된 제 기능을 수행했다는 일반의 인정을 받으며 폭풍을 견뎌냈다.


그들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실수로 받아들여졌고 수시로 교정됐다.

관련기사



군과 중앙은행 모두 오류가 없지 않았으나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와 동일한 평가를 받지 못한다.

아마 지난 2000년 ‘부시 vs 고어’ 케이스에서 보수화한 대법원이 오랫동안 지켜온 주권(주 정부의 권리) 존중 원칙을 포기하고 노골적으로 당파적 결정을 내린 것이 대법원의 신뢰성을 흔들어놓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일부는 좌파가 극우성향 판사인 로버트 보크 대법관 지명자의 인준에 반대하는 극렬 캠페인을 벌인 1987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불신의 뿌리를 더듬는다. 당시 보크 판사의 인준은 불발됐다.

언제가 적확한 시발점이건 사법부는 불편부당성과 신뢰성의 보루라는 평판을 상실했다. 이와 관련해 정치 예측 블로그인 파이브서티에이트는 “현재 사법부는 현대사의 어느 때보다 위상이 약화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는 정점을 찍은 1980년대의 56%에서 오늘날 37%로 곤두박질쳤다. 캐버노 소동으로 이 수치는 더 낮게 떨어질지 모른다.

양당 모두 이 같은 추락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파심과 양극화의 발흥에 대한 대다수의 논의 결과는 이성적인 옵서버들이 명확히 파악한 바를 확인해줬다.

공화당은 특히 1994년의 ‘깅그리치 혁명’ 후 당파심과 양극화를 주도한 중심세력이었다. 우측으로 크게 이동한 공화당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반역자로 매도하는 전술을 개진했고 현재 우리의 담론을 지배하는 선동적인 언어를 장려했다.

상원 다수당 지도자인 미치 매코널이 2016년 메릭 갈런드 대법관 지명자에게 헌법에 명시된 인준 청문회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다년간 추진돼온 공화당 전략의 가장 터무니없는 예에 불과하다.

민주당 역시 공화당의 전술을 그대로 모방했다. 정치인들은 일방적인 무장해제를 하지 않는다.

미국의 민주제도는 절충을 요구하게 고안됐다. 의회제에서처럼 정부의 여러 조작 레버를 한꺼번에 통제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 총리는 행정부와 의회의 다수당을 동시에 이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정부 시스템은 서로 다른 힘의 근원과 적법성을 지니며 그들 모두가 정부의 기능을 공유한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행정·입법·사법 등 정부의 3부와 정당들, 주 정부 등이 협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종류의 협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부분적 이유는 정당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쳐지지 않을 정부 기관들과 규정 그리고 규범이 존재한다는 생각일 것이다.

시스템의 일부 측면은 전체로의 국가에 맞춰진 초점을 유지해야 하며 입헌공화국으로 장기적인 생존능력과 핵심가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들 국가기구 가운데 으뜸은 단연 사법부다. 지금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는 그랬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