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륜형 장갑차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궤도식이 주류를 이뤘지만 이제 바퀴 6~8개 달린 차륜형 장갑차 개발과 채택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육군은 야전운용평가를 마치고 K808과 K806 차륜형 장갑차 양산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북한도 지난 9월 9·9절 열병식에서 새로운 형태의 대전차 장갑차량을 선보였다. 이스라엘 군은 에이탄(Eitan) 장갑차 개발을 완료하고 M113 장갑차를 전량 교체할 계획이다. 동북아도 뜨겁다. 일본은 차륜형 장갑차 위에 전차 포탑을 얹힌 경전차의 배치를 올해 안에 마칠 계획이다. 중국은 차륜형 장갑차에 장착한 155㎜ 곡사포를 최근 선보였다.
◇왜 차륜형인가=가격과 성능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차량형 장갑차가 획득 비용에서는 동급인 궤도형에 비해 최소 2분의1가량 싸다. 운용과 유지 비용도 훨씬 적다. 대신 차량형의 성능은 높아졌다. 방탄기술에서 타이어, 통신기술, 주로 사격 시 반동제어기술 등의 발달로 궤도식 못지않은 야전 기동력과 방어력을 선보이며 도입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영국이 1차 대전에서 선보인 탱크를 병력 수송용으로 개조한 궤도형 장갑차량으로 독일의 철조망 방어선을 돌파한 이래 표준으로 굳어졌던 궤도식이 고대로부터 이어진 철갑으로 보호되는 고성능 마차 시대로 다시금 돌아가는 셈이다.
◇우리 군 도입 더욱 늘어날 듯=한국 군은 차륜형 장갑차에 관심이 적었다. 방산업체 몇몇이 해외 수출 실적을 내는데도 불신이 앞섰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공여한 M8 그레이하운드 차륜형 장갑차가 북한 군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경험과 1970년대 말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기술을 받아 면허생산한 KM900과 KM901의 잦은 고장에 시달린 경험 탓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적인 추세에 합류했다. 한국 군에서 차륜형 장갑차는 급속히 늘어날 수도 있다.
최근 육군에 배치되기 시작한 K808 등의 계약 물량은 약 600여대. 여기에 대공포와 지휘소형, 박격포형 등 파생형 개발이 추진되고 있어 실제 보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과 비슷한 차륜형 경전차 도입도 제기되는 분위기다. 더욱이 육군이 추진하고 있는 상비사단 보병의 기동화를 위해서는 계획보다 많은 물량이 필요하다. 육군뿐 아니라 해병대의 기동화가 진행되면 수요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간이식 증가 장갑이나 반응 장갑 부착을 통한 방호력 보강은 과제로 꼽힌다.
◇북한도 올해 차륜형 장갑차 선보여=흥미로운 것은 북한도 올해 차륜형 장갑차를 선보였다는 점이다. 북한은 9월9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을 통해 대전차 미사일 8기를 장착한 차륜형 장갑차를 처음 선보였다. 북한 비핵화 논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대형 탄도미사일은 꺼내지 않는 지난 9·9절 열병식에서 북한은 바퀴 6개에 대전차 미사일 발사관 8개를 적재한 차륜형 장갑차를 선보였다. 중국제 WZ523 장갑차나 PL사의 05P식 병력수송 장갑차를 개조 또는 모방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장갑차가 전력화하면 유사시 기갑 전력에 큰 압박 수단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넓은 국토를 가진 구소련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전부터 적지 않은 차륜형 장갑차를 운용해왔으나 임무와 목적별로 차량형 장갑차를 생산하거나 도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전 빈번한 이스라엘, 차륜형으로 눈 돌린 이유는
인구 적어 병사의 생존성 중시
각종 장갑 부착 방어력에 매료
◇‘궤도 차량’을 신앙처럼 받들던 이스라엘도 차륜형 대거 도입=이스라엘 군이 주력 장갑차를 궤도형에서 차륜형으로 바꾼다는 것은 세 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첫째는 실전 경험이 가장 많고 늘 전쟁에 대비하며 빈번하게 전투 상황을 맞이하는 군대마저 차륜형으로 전환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차륜형 도입 검토와 포기 과정을 반복해왔으나 최근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차륜형 장갑차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중량. 에이탄은 기본 중량만 30∼35톤. 증가 장갑을 장착하면 더 무거워진다.
차륜형 장갑차 중에서는 가장 대형에 속하는 독일의 복서 장갑차 MM의 기본 중량이 24톤이지만 각종 장갑을 덧대면 38톤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에이탄의 최대 중량은 40톤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서방 진영은 물론 옛 사회주의 진영까지 포함해 가장 무거운 차륜형 장갑차에 해당된다. 러시아가 헤비급 장갑차라고 자랑하는 M16/M17 차기 차륜형 장갑차의 중량이 25톤. 에이탄은 웬만한 경전차를 능가하고 레오파트 1전차 등 2세대 주력 전차급이다. 엔진의 출력 역시 750마력으로 2세대 주력전차 수준이다.
무겁다면 그만큼 방호력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기름도 많이 먹고 유지비가 올라가기 마련인데도 이스라엘이 전투중량을 중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병사들의 목숨이 귀하기 때문이다. 아랍의 여러 나라에 둘러싸인 채 수백배 인구를 가진 이슬람 세력과 싸우는 이스라엘은 일찍부터 병사들의 생명 유지를 제1의 목표로 삼아왔다. 이스라엘 군 인명 중시 사상의 상징이 바로 아크자리트(Achzarit) 장갑차. 2·3차 중동전에서 대거 노획한 이집트와 시리아 군의 T-54/55 전차가 원형이다. 이스라엘은 이 전차의 포탑을 들어내고 엔진의 미국제 교체와 보병 출입구 재설계 등을 거쳐 보병들의 전장용 택시로 바꿨다. T-54/55 전차의 당초 중량은 38톤이었으나 아크자리트 장갑차는 포탑을 빼버렸음에도 오히려 44톤으로 늘어났다. 각종 장갑을 부착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방어력이 훨씬 강해진 이 장갑차를 시가지 전투에 내보냈다. 아크자리트 장갑차는 이전까지 미국과 소련이 개발한 어떤 장갑차보다 막강한 방어력을 자랑하며 승무원과 탑승보병의 목숨을 구해냈다. 이스라엘 군은 미국제 M113 장갑차도 경량화 증가 장갑 또는 반응 장갑을 입혀 방어력을 높인 사례로 유명하다.
세 번째는 물량. 이스라엘은 전 세계를 통틀어 궤도형 장갑차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운용하는 국가다. 대공 장갑차 등 파생형과 발전형을 포함해 이스라엘이 보유한 M113 시리즈는 6,131대에 이른다. M113 장갑차의 원조인 미 육군의 운용 수량 1,568대보다 훨씬 많다. 병력 수송용인 M 113보다 강력하고 중무장한 보병전투차급(M2/M3)을 합쳐도 미군의 궤도형 장갑차는 3,220대. 아크자리트나 나메르 등 전차를 개조한 이스라엘의 시가전용 장갑차를 포함하면 이스라엘이 운용하는 전체 궤도형 전투 장갑차는 미군의 두 배 수준이다. 궤도형 장갑차량을 중시해왔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군의 에이탄 도입 예정 대수는 2,010대. 단순 수치로만 보면 에이탄 계획은 기존 M113과 1대1 교체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은 T-55 전차 등의 차대를 전용한 강습 또는 위력정찰용 장갑차를 성능 개량하고 국산 메르카바 전차의 차대를 아크자리트 장갑차 개조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며 ‘나메르’라는 시가지 전용 장갑차 도입을 늘릴 계획이다. 방공이나 구난·구조, 정비 등에 사용되는 M113 장갑차 파생형도 당분간 현역 자리를 지킬 것으로 전망된다. 범용으로 쓰이던 M113의 빈자리에 에이탄이 들어가되 기존 장비는 임무별 특성에 맞춰 활용한다는 얘기다.
에이탄이 목표대로 생산되면 미국이 4,466대(파생형 포함)가량 운용하는 스트라이커 장갑차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차륜형 장갑차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량 생산으로 생산 코스트가 내려가면 수출 시장에서도 탄력받는 선순환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에이탄의 영향으로 각국의 차륜형 장갑차에 대한 무게 증가나 추가 장갑 부착 등이 논의될 수 있다. 한국 군이 도입을 시작한 K808 장갑차의 장갑 증가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보인다. K808 장갑차의 경우 전투중량이 18톤 이하여서 14.5㎜ 탄 이상의 대구경탄이나 보병 직사화기에 대한 방어력이 약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