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과 각 부처 산하에 설치된 각종 자문위원회는 지난 6월 현재 총 521개에 달한다. 국민의정부 말 329개였던 위원회 수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535개로 급격히 늘어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각각 493개, 522개까지 줄어든 후 현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독자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기관 위원회 수까지 합하면 558개로 늘어난다.
가장 많은 자문위를 거느린 부처는 50개 위원회가 들어선 국토교통부다. 건설·토목·운송 관련 각종 이해관계자들과 엮인 정책 사안이 많은 부처 특성 때문이다. 국토부에 이어 국무총리실(47개), 보건복지부(44개), 행정안전부·산업통상자원부(27개), 교육부(25개), 기획재정부·환경부(23개), 농림축산식품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21개) 순으로 많다. 행안부는 “매년 정비를 통해 폐지되는 위원회보다 신설되는 위원회가 많아 전체적으로는 위원회 수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위원회 수가 아니라 이름만 번지르르하게 설치돼 세금만 축내는 위원회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2014년 문화 다양성 보호 및 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국무총리 산하 문화다양성위원회는 당연직 위원장인 국무총리를 빼면 구성 위원이 한 명도 없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미구성’ 상태다. 이렇다 보니 최근 1년간 본회의는 물론 분과회의도 단 한 차례 개최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올해 회의 예산으로 900만원을 배정받았다. 간판만 있는 ‘유령 위원회’에 정부 예산이 배정되는 깜깜이 예산 행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유령 자문위원회를 포함해 총 521개 위원회에 배정된 예산(회의 예산 기준)은 197억4,500만원에 이른다. 교육부 산하 한국사정보화심의회도 2008년 설립됐지만 현시점에서 위원회 구성조차 돼 있지 않다. 존속기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일몰 적용 대상이 아닌 ‘미설정’이어서 법률 조항 폐지 없이는 계속 연명하는 형태다.
대면회의 없이 서류상으로만 본회의가 개최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16년에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진흥심의회라는 곳은 목적 자체도 ‘인문학 진흥 주요 사안 심의’로 모호할 뿐 아니라 최근 1년간 회의는 한 차례의 서면회의가 전부다. 상당수의 정부 산하 자문위가 “존속 자체가 목적”이라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이유다.
이처럼 각종 ‘유명무실’ 위원회가 정리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위원회 설치와 폐지가 상당 부분 국회 몫이기 때문이다. 521개의 자문위 가운데 대통령령으로 설치된 자문위는 61개인 반면 각종 법률에 근거해 설치된 곳은 460개로 88%의 비중을 차지한다. 행안부 관계자는 “법령으로 설치된 위원회는 설치 때와 마찬가지로 국회를 거쳐 폐지돼야 한다”면서 “행정 조치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매년 위원회 통폐합 계획을 세우지만 실제로 목표가 달성되는 비율은 크지 않다.
지속성 있는 정책을 생산해야 하는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을 자문하는 기구의 존폐가 정권에 휘둘린다는 점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 들어 폐지된 4개의 대통령 직속 위원회(국민대통합위·문화융성위·청년위·통일준비위)는 박근혜 정부 때 설치된 위원회들이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위원회가 전문성과 대표성을 갖추고 본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는 외부 감시와 통제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한재영기자 jyha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