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머니나. 목 매단 사람이다. 벌거벗은 남자가 그것도 둘 씩이나. 전시장에 들어섰다가 기겁하기 일쑤고 ‘헉’ 소리까지 내지르는 사람도 있다. 현대미술가 한효석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다. 축 늘어진 몸뚱이의 사내 하나는 백인, 하나는 흑인이다. 실제 사람과 같은 크기인데다 살결까지 생생하다. ‘불평등의 균형’이라는 작품명에 ‘누가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었는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작가는 평택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병사를 모델로 그들의 신체를 캐스팅 해 작업했다. 단 백인의 몸에는 흑인의 피부색을, 흑인에게는 백인의 피부색을 칠했다. 피부색이 어떻든 간에 인간의 가치는 동등하다는 것을 보여주며 인종 차별 문제를 상기시킨다.
평택에서 목축업을 하는 집안에서 나고 자랐으니 어려서부터 한효석은 핏물 흐르는 고깃덩어리가 친숙했고, 주변에는 미군기지를 들락거리는 혼혈인 친구가 많았다. 그의 대표작인 벗겨진 피부 아래로 선홍빛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섬뜩한 인물화는 피부색 걷어내고 보면 고깃덩어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의 ‘차별없는 존엄함’을 얘기했다. 지난 2014년 같은 곳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꼭 진짜처럼 보이는 ‘번식을 위한 어미돼지’를 매달았고 그 아래 새끼돼지 조형물들을 선보여 동등한 생명의 가치를 얘기했던 그다. 당시 전시는 임신부와 심신미약자의 관람을 제한했었고 이번에는 ‘18세 미만 관람불가’ 딱지를 붙였다.
그만큼 신작은 더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어른 키 높이 만한 나무상자 위에 나체의 인물들이 위태롭게 서 있는 작품도 인상적이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그대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극한에 놓인 불안한 현 세대를 상징한다. “자본의 논리로 끊임없이 서로를 견주고 경쟁에 짓눌리며, 선택받은 소수만 살아남고 다수는 어떠한 안전장치 없이 사회의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우리 사회의 구조와 다를 바 없다”는 작가의 설명이 뒤따른다.
양팔을 수평으로 뻗고 서 있는 벌거숭이 남성은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이라고도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 조각의 실제 모델은 영화 ‘직지코드’의 감독이자, 주연배우인 데이빗 레드먼(David Redman)이다. 전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인종 차별에 관한 문제에 대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의도를 지지하며 레드먼이 기꺼이 모델로 응했다.
한효석은 “아름다움에는 관심이 없다”라며 “나 말고도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는 작가는 수없이 많다”고 말한다. “예술가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세상이 바뀌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 사회와 이 세상이 좀 더 정상적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되도록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그가 ‘불편한 미술’을 고집하는 이유다. 11월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