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정부를 대신해 국내외 기관에 23조원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예산을 따로 편성하지 않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한 결과인데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정부가 한은을 금고처럼 활용하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1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 한은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한은이 정부 대신 국내외 기관에 출자·출연한 금액은 지난 8월 말 현재 23조428억원(누적액)으로 집계됐다. 국내 기관에는 한국수출입은행과 금융감독원 등에 출자 1조8,100억원, 출연 3조1,106억원 등 4조9,206억원이 투입됐다. 국외 기관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아시아개발은행(ADB) 등에 출자 17조618억원, 출연 1조604억원 등 18조1,222억원을 납입했다.
특히 국외 기관에 대한 납입은 ‘예외’ 규정이 사실상 주된 규정 역할을 했다. ‘국제금융기구에의 가입조치에 관한 법률’ 제2조에 따르면 정부는 국제금융기구에 출자(출연)하려면 국회의 의결을 받아야 하지만 예산 반영이 어려울 때는 한은이 출자금을 납입하도록 한다. 조 의원실 분석 결과 국제금융기구에 한국이 납입한 18조9,317억원(잔액기준) 중 한은 몫은 18조1,222억원으로 전체의 95.7%에 달했다.
한은이 정부 대신 낸 23조원의 대부분은 회수되지 않았다. 수은과 한국주택금융공사 배당금으로 1,317억원을 돌려받은 것이 전부인데 전체 출자·출연금의 0.57%에 불과하다. 근로자재산형성지원기금(재형저축)의 경우 재원 부족으로 2004년 폐지돼 한은이 출연한 1조2,767억원을 회수할 방법이 사라졌다.
조 의원은 “정부가 예산 편성 심사를 피하려 한은의 발권력을 활용하는 꼼수를 쓴다”며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을 막기 위해 중장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