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추상미 "나와 역사의 상처 치유 여정 담았어요"

다큐 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로 배우서 감독 변신 추상미

폴란드로 보내졌던 1,500명 北 전쟁고아와 이국땅 선생님들 이야기

산후우울증 겪던 중 취재·촬영하면서 타인에 대한 연민 생겨

탈북민·통일에 대해서도 관심 갖는 계기 됐으면

‘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감독‘폴란드로 간 아이들’의 추상미감독



폴란드 프와코비체마 기찻길. 한 여성이 낙엽으로 덮인 기찻길을 걸으며 노래한다.

“우리 서로 헤어져도 울지를 말자. 가시길을 걸어가도 슬퍼를 말자. 기다려라 기다려 기다려다오. 광복의 그날 오면 다시 만나리.”


이 장면을 배우, 아니 감독 추상미가 스마폰을 들고 가만히 촬영한다.

추상미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이렇게 시작한다. 영화가 비추는 이야기는 꽁꽁 숨겨져 있던 이야기도 아니건만 가히 충격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남북 합산 십만명의 전쟁고아들이 생겼고 북한은 1951년 동유럽 사회주의 동맹국가들에 전쟁고아들을 보내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고아들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폴란드로 간 1,500명 아이들과 이들을 돌봐준 폴란드인 선생님들의 따스한 인연과 상처의 치유를 담아냈다.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 감독은 이 이야기를 “전쟁의 가장 비참한 결과물인 전쟁고아들에게 대리 부모 역할을 해줬던 이국땅의 선생님들의 이야기이자 세계인이 함께 전쟁의 상처를 수습했던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서로에게 달려들 듯 영화의 소재는 불현듯 추상미에게 다가왔고 사로잡았다. 추상미가 소재를 접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한 시점만 해도 주변의 만류가 컸다. 영화계는 물론 관객들의 관심도 미미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꼭 맞는 시대를 만났다.

“산후우울증을 겪던 중 TV에서 봤던 북한 꽃제비의 모습이 가슴 속 깊이 남아있었어요. 그러다 지인의 출판사에서 보류 상태에 있던 소설 ‘천사의 날개’ 이야기를 듣게 됐고요. 폴란드 언론인 욜란타 크리소바타가 쓴 이 책은 1951년 폴란드로 비밀리에 보내진 한국전쟁 고아 1500명이 북송되기 전까지 폴란드에서 겪은 8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책을 읽고 현지에서 관련 논문을 쓴 폴란드 브로츠와프대학 한국학과 이해성 교수의 도움을 받으며 대부분의 취재를 국내에서 마무리할 수 있었죠”

선생님들의 증언을 듣고 있는 추상미 감독선생님들의 증언을 듣고 있는 추상미 감독


시작은 극영화였다. 사전 취재와 시나리오 작업을 마무리하고 폴란드 현지로 취재를 가기 위해 오디션 과정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배우지망생 이송과 비행기에 올랐고 결국 영화는 다큐멘터리로 완성됐다. 아이들을 돌봐주던 선생님들 대다수가 고령으로 그들의 생생한 증언과 육성을 남길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계속해서 추상미를 잡아끌었던 것이다.


“사전제작기를 담은 다큐로도 가치가 있겠다 싶어 우선 다큐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완성하고 보니 이번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기대치 못한 치유와 발견의 시간이 됐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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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폴란드 교사들이 품고 있던 전쟁의 상처가 전쟁고아들의 상처와 조우하고 이를 취재하던 남한의 추상미와 탈북민 이송의 상처가 맞닿는 장면이다.



“처음엔 제 얘기를 빼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지금은 넣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분단의 현재성, 지금의 청소년에게까지 되물림되는 상처를 제대로 비추려면 제가 이 이야기에 관심 갖게 된 계기, 통일이 왜 나의 이야기가 됐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꼭 그렇게 됐죠.”

실제로 추상미에겐 통일을 바라는 이유가 생겼다. 영상 속에서 요제프 보로비에츠 프와코비체 양육원은 추상미에게 간절하게 말한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사랑한다고 전해달라”고. 사명을 얻게 된 추상미는 한국으로 돌아와 남북 청소년들이 각자의 사연과 삶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함께 폴란드에 다녀온 이송도 함께 활동하고 있다. 또 이 영화를 계기로 ‘천사의 날개’ 역시 한국의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요즘 추상미는 극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한창이다. 취재 중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와 고아들과 선생님들의 사연을 풀어 아름다운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낼 예정이다. ”분단 이후 남과 북엔 서로에 대한 적대와 증오가 필요했고 남한은 그것을 동력 삼아 발전한 것도 사실이에요.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우리가 해야할 건 마음과 마음을 모으는 것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의 통일을 위해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고 그게 전쟁의 상처라고 생각해요. 제 영화가 그 상처를 계속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영화 상영 이후 실제 폴란드에 다녀온 고아들과 연결고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당시에는 고등학생 시절 영어 선생님이 1,500명의 고아 중 한 명이라는 탈북민을 만났고 김일성 종합대학을 졸업한 고위 간부인 자신의 아버지가 폴란드로 보내졌던 고아라는 한 여성도 소개받았다.

감독 추상미의 여정도 이제부터 시작이다. ”제가 관심 있는 분야는 시대가 안고 있는 고민과 상처예요. 제가 산후우울증 와중에 느꼈던 모성이 정의를 넘어 타인을 바라보게 하는 힘이 됐던 것처럼 분리와 분열의 시대를 연민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계속해서 포착하고 싶어요. 그게 감독 추상미의 주제와 과제가 되겠죠.“ 31일 개봉
사진제공=언니네홍보사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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