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무장단체에 억류됐다가 석방된 일본 언론인 야스다 준페이(安田純平·44)씨가 억류 당시 공개된 동영상에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소개한 것은 자신을 억류한 무장단체의 규칙 때문이라고 말했다.
야스다 씨는 귀국길 비행기에서 NHK에 “감금 장소가 알려지지 않도록 실명이나 국적을 말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다”며 “다른 억류자가 이름이나 국적을 듣고 석방되면 일본 등에 통보해 감금 장소가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야스다 씨는 지난 7월 공개된 동영상에서 일본어로 “내 이름은 ‘우마르’입니다.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해 논란이 됐다. 그는 자신을 이슬람권에서 흔한 이름인 ‘우마르’라고 소개했던 것에 대해서는 “억류 중 사정이 있어서 이슬람교로 개종했어야 했는데, 개종할 때 이름을 우마르로 정했다”며 “그들(무장조직)이 정한 규칙에 따라서 말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야스다 씨는 억류 당시의 상황과 관련해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옥이었다”며 체념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도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매일매일 점점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이어 “3년간 나 자신이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른다”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몰라서 걱정”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프리랜서 언론인인 야스다 씨는 2015년 6월 시리아에서 행방불명된 뒤 23일 밤(일본시간) 3년 4개월 만에 풀려났다. 알카에다 연계조직 ‘알누스라전선’은 석방되게 도와달라는 그의 모습을 모두 4차례 동영상에 담아 공개한 바 있다. 석방 후 터키에 머물렀던 그는 이스탄불을 거쳐 이날 저녁 일본에 도착한다.
야스다 씨의 억류가 장기화하면서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에 비판적인 여론이 인 적도 있지만, 일본 정부는 그가 석방된 뒤 그동안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음을 드러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총리) 관저를 사령탑으로 하는 ‘국제 테러 정보수집 유닛’(CTUJ)을 중심으로 카타르와 터키를 움직이게 한 결과”라며 정부 차원의 노력을 강조했다.
CTUJ는 일본인 10명이 사망한 아르헨티나 인질 사건과 이슬람국가(IS)에 의한 일본인 살해 사건 후인 2015년 12월, 일본 정부가 경찰청과 외무성, 방위성 등 관계 부처 인력 90명을 모아 창설했다. 이 조직은 야스다 씨가 석방되기 1주일 전 그의 석방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아사히신문에 “지금도 중동의 어떤 대사관에 CTUJ의 일원이 있다. (야스다 씨의 석방은) 그 성과다”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이와 관련해 “각국의 상층부와 신뢰관계를 구축했다”는 정부 고위 관료의 말을 인용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전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타밈 빈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군주(에미르)와 각각 전화통화를 해 감사의 뜻을 표하며 야스다 씨의 석방이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는 점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본 언론 역시 아베 총리가 지난 9월 미국 뉴욕 방문 때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야스다 씨의 석방을 직접 요청했고 일본 정부가 과거 인질 석방 중개에 성공한 적이 있는 카타르와의 관계를 중시했다며 아베 정권의 노력을 보도했다.
다만 야스다 씨의 석방에는 이런 외교적 노력보다는 납치한 무장조직에 인질 몸값을 지불한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많다. 민간단체인 시리아인권감시단은 야스다 씨의 석방 후 일본 언론매체들에 “카타르가 억류 언론인의 생존과 석방을 위해 힘을 다했음을 국제적으로 호소하고자 몸값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카타르가 지급한 몸값은 3억엔(약 3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스다 씨의 정확한 석방과정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일본 정부는 “몸값 지불을 포함한 거래는 하지 않았다”고 입장을 밝혀 시리아인권감시단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서영인턴기자 shyung@sedaily.com